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 坂本龍一)가 지난달 28일 직장암으로 투병 끝에 별세했다고 합니다. 향년 71세(1952 - 2023). 음악의 끈을 놓기에는 이른 나이입니다. 그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 겸 피아니스트입니다. 어젯밤 소식을 듣고 할 말을 잃었습니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생전에 그가 좋아했다는 문장입니다. 의사로 유명한 히포크라테스가 한 말이지요. 한 문장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네요. 여기에도 그와 관련된 글을 종종 올렸는데, 지난 1월에 올린 글이 마지막 글이 된 셈입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그가 남긴 말과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명곡 <Merry Christmas Mr. Lawrence>로 안타까운 마음을 대신합니다. 부디 편히 영면하기를!!
"나는 힘든 순간을 뛰어넘어야 비로소 그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중요한 순간에는 대개 어려운 쪽을 선택해 왔지요. 나는 절대적으로 만족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드뷔시나 바흐를 들어도. 곡을 직접 만들어도 마찬가지지요. 만족할 수 없어서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요. 만족해 버리면 다음은 없기 때문이지요."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삶이 무한하다고 여긴다. 모든 건 정해진 수만큼 일어난다. 극히 소수에 불과하지만. 어린 시절의 오후를 얼마나 더 기억하게 될까? 어떤 오후는 당신의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날일 것이다. 네 다섯 번은 더 될지도 모른다. 그보다 적을 수도 있겠지. 꽉 찬 보름달을 얼마나 더 보게 될까? 어쩌면 스무 번. 모든 게 무한한 듯 보일지라도...”
ㅡ 자신이 음악감독을 맡은 영화 <The Sheltering Sky, 1990>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Paul Bowles의 글을 다시 인용
"음악으로 사람 기운을 북돋운다든가 용기를 준다든가 하는 걸 가장 싫어한다. 그런 목적으로 음악을 만드는 음악가도 좋아하지 않는다. 내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사회적, 정치적 영향을 주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음악(예술)을 만든다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신경 쓰는 게 아니다. 스스로에게 기분 좋은 소리, 음악을 만들 뿐이다."
"불손하게도 대학생 때까진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첫 앨범을 내면서부터는 음악 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은 없다. 그런 음악가가 있었구나 하는 정도면 그걸로 충분하다."
"처음 암을 발견한 2014년 62세에 죽었다고 해도 49세에 세상을 떠난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에 비하면 충분히 오래 산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경애하는 바흐나 드뷔시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언제 죽더라도 후회가 없도록 부끄럽지 않은 것을 좀 더 남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