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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y 22. 2023

오위의 소원과 행복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참마 죽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참마 죽>에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는 관리 '오위'가 등장한다. 그는 참마 죽을 마음껏 먹는 것을 소원으로 삼고 사는 사람이다. 그러다가 평생 꿈에 그리던  참마 죽을 양껏 먹을 수 있게 되자 오히려 잘 먹지 못한다.


평소 그렇게 먹고 싶던 참마 죽이 막상 눈앞에 있자 부담으로 다가온 것이다. 자신의 소외된 삶을 떠올리면서 그는 말한다. '소원은 오직 홀로 소중하게 간직할 때 행복한 것'이었다고.


'오위는 참마 죽을 먹고 있는 여우를 바라보며 이곳에 오기 전의 자신을 마음속에서 그립게 되돌아보았다. 그것은 수많은 사무라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자기 자신이었다.


촉새 같은 교토의 어린놈들에게조차 "흥, 딸기코 주제에"라고 욕을 먹는 인간. 색 바랜 관복에 밑단 묶은 바지를 입고 주인 없는 삽살개마냥 수자쿠 대로를 휘적휘적 돌아다니는 가련하고 고독한 인간. 하지만 그자는 참마 죽을 질리도록 먹고 싶다는 소원을 오직 홀로 소중하게 지켜온 행복한 인간이었다....'




소원은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할 때 비로소 소원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그건 그다음 문제다. 소원은 뭔가를 이루고 싶은 욕구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소원을 간직한 ‘마음’ 자체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 마음 자체가 소중한 것이다.


무언가를 마음에 담아둔다는 것, 그것도 오랜 기간 동안, 그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보통 사람들은 어느 순간 포기하고 마는 것을. 소원은 마음에 간직할 때 비로소 소원임을,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님을 오위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깨달았다. 류노스케는 이 사실을 그의 소설에서 잘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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