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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ul 26. 2023

차라리 꽃이었으면

퇴근 후 늦은 저녁이나 밤늦은 시간, 산책을 합니다. 낮 동안 쌓인 피곤으로 걷는 것이 힘들 때가 많지만, 계절이 주는 풍경을 보며 힘을 냅니다. 산언저리가 산 밑보다 시원한 편이지만 습해서 많이 덥습니다. 걷다 보면 어디서 왔는지 벌레들이 들러붙어 괴롭히기도 합니다. 봄에 핀 꽃은 이미 졌고, 여름 한철을 사는 꽃이 피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밤이지만 선명하게 눈에 띕니다.


오래전에 이사라 시인의 <사람>이라는 시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시를 읽고 여기에도 글(링크)을 쓰기도 했으니 제 딴에는 시에 깊은 울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인은 '사람이 꽃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라고 하지만, 꽃을 보고 있으면 제가 들에 핀 꽃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꽃으로 살아본 적이 없으니 꽃에 어떤 희로애락이 있는지, 그저 자연적인 본능에 따라서만 사는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만요.


분명한 건 있습니다. 꽃은 한 곳에 자리 잡으면 붙박이처럼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 그저 한곳에서 같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비바람이나 폭풍이 몰아쳐도 그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움직일 수 없는 꽃은 자신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향기로만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누군가를 끌어오는 것이지요. 그래서 꽃이 아름다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꽃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건 인간이니 우리에게도 좋은 점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 다자이 오사무도 <여학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원 구석에 장미꽃이 네 송이 피어 있다. 노란색이 하나, 흰색이 둘, 핑크가 하나. 멍하니 꽃을 바라보며, 인간에게도 정말 좋은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건 인간이고, 꽃을 사랑하는 것도 인간이니까."




인간은 꽃이 아니니,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인간 역시 시공간, 환경의 제약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마음'으로부터 제약을 받습니다. 도덕과 의무감 등으로 하고 싶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고, 하기 싫은 데도 해야만 하는 일들도 비일비재합니다.


차라리 꽃이었다면 나았을 텐데, 우리는 꽃보다 자유롭지만 오히려 그 자유로움이 우리의 삶을 제한할 때도 있으니, 그래서 더 힘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떤 의미에서는 제가 꽃이 아니길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차라리 꽃이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꽃은 인간과 달리 향기와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니까요. 어제는 산에 핀 꽃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매일매일이 똑같은 일상, 당신은 무엇에서 삶의 희망과 보람을 느끼나요? 꽃 한 송이보다 나을 수 없는 게 우리 인생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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