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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05. 2023

나는 다만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잘 살고 있겠지.

또 앞으로도 잘 살아가겠지.

나는 다만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몇 달 전 읽었던 이기호 작가의 소설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 최근 이 문장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래전에 헤어진 사람, 이제는 어떻게 살든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다소 심드렁해진 주인공의 복잡한 심정을 이 한 문장으로 다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 자신 때문에 고초를 겪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가 안쓰럽다거나, 미안한 마음 또한 들지 않는다고.' (그녀는 남편을 죽인 살인범으로, 그녀가 언급한 남자는 그녀가 한때 관계를 맺었던 사람으로 공범으로 의심받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또 했을까? 문장으로 표현하면 한 사람의 심정도 이렇게 간단히 정리될 수 있는 것이다. 문장이 갖는 힘이지만, 문장의 한계이기도 하다.




주인공처럼 저런 생각이 필요할 때도 있다. 안 그러면 나만 피곤해지니까. 그런데 이게 말처럼 잘되지 않는다. 아마 주인공도 분명히 저렇게 말하고서 생각이 많아졌을 거다. 원래 생각을 안 하려고 하면 생각이 더 많아지는 모순에 빠지고 만다. 생각도 적당한 순간 흘려보내야 한다.


남편을 살해한 여인이 독백 조로 자신의 지난 이력을 진술하고 있는 소설. 생각이 많아져서 말도 줄였다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나만 생각이 복잡해졌다. 세 명의 남자와 관계를 맺은 그녀, 그러나 깊이 사랑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이 그렇게 한 단어로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녀가 남편을 죽인 이유가 선뜻 와닿지 않았지만, 과연 이렇게 된 마당에 그게 중요할까 싶었다. 어렵게 마음먹고 불륜 사실을 고백했는데도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무심하게 행동하는 남편, 보통의 남자라면 보일 수 없는 태도 앞에 오히려 주인공이 절망한다.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고? 그 말을 속으로만 되뇔 뿐.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러기 전에 서로 노력해야겠지만, 요즘 사회 분위기를 보면 쉽지 않아 보인다. 주인공 김숙희 같은 여인이 소설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을까?


작가의 말대로. "그러니까 사실 나는 지금도 이것이 궁금하다. 왜 어떤 사람은 살인자가 되고, 또 어떤 사람은 정상이 되는 것인지. 혹시 그것은 같은 것들이 아닌지." 아마 작가는 이걸 의도하고 이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밉다는 이유로 마음속으로 여러 사람을 죽이지 않는가. 마음에서 흔적을 지우는 것, 그것 역시 살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어떤 정답이 책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정답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정답이 없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놓지 않으려는 것, 즉 질문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기 위함이다. 인간이 AI와 여전히 다른 점은 바로 이 질문하는 힘에 있다. 그렇다면 이기호 작가의 이 소설은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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