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수 Aug 04. 2021

삶이 조금 더 부드러웠더라면

Alan Rickman의 삶/ 오스왈드 챔버스

If only Life could be a little more tender

and Art a little more robust...

(만약 삶이 조금만 더 부드럽고

예술이 조금만 더 강직했었더라면...)


<Alan Rickman(1946 -2016)>

Alan Rickman은 영국 출신 배우이다.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단원이었던 그는 고전 연기와 현대 연기에 모두 능숙했던 연기파 배우였다. 우리에겐 영화 <다이하드>의 한스 그루버 역과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세베루스 스네이프 교수 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악역에 많이 출연해서 이미지는 썩 좋지 않다.


원래 악역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잭 니컬슨처럼 연기가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갔을 때 감정선이 복잡한 악역도 해낼 수 있다. 악역을 연기하기 위해 배우가 겪어야 할 고통과 고뇌는 우리가 알 수 없다. 배우라면 누구나 빛나는 역을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니까. 그가 생전에 남긴 말 역시 그의 고뇌를 잘 보여준다.


“재능은 책임이다. 배우들은 변화의 대리인들이다. 한 편의 영화, 한 편의 연극, 한 편의 음악, 한 권의 책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아마 그는 이런 마음으로 악역이라도 최선을 다했으리라. 자신의 연기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이 그에게 있었던 것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 처음에 인용한 그의 말이 깊은 울림을 준다. 삶은 더 부드러워져야 한다. 그러나 하는 일, 즉 연기는 더 강직해져야 한다. 적당히 타협해선 안된다는 뜻이다.


내가 하는 일과 스스로에게는 강직하되, 주변 사람들에게는 좀 더 부드러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는 이 둘을 혼동한다. 자신에게는 지극히 관대한 반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더 엄격하다.


이런 모순된 삶을 살았으니, 세상이 이런 것이다. 세상의 혼란스러움과 무도함은 내가 뿌린 씨앗의 결과라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나도 그 입장이 되었더라면 똑같았을 테니.






조선시대 선비들은 신독(愼獨)을 강조했다.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간다는 뜻으로 선비들의 고결한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Rickman이나 조선시대 선비들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온갖 추하고 나쁜 짓을 하면서 사람들이 볼 때는 안 그런 척한다. 위선도 그런 위선이 없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부끄러운 일이다. Oswald Chambers 역시 그의 책 <My Utmost for Highest>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앙생활과 인격은 '삶의 예외적인 순간에 무엇을 하느냐'로 알 수 없고, 오히려 '일상적인 삶 속에서 어떻게 사느냐'로 알 수 있다. 사람의 가치는 무대 위에 서 있을 때가 아닌 일상적인 일들을 대하는 자세에서 나타난다."




그는 10대에 만난 첫사랑 리마 호튼과 50년을 함께 살았다. 꽃다운 소녀 시절 그를 만나 그의 마지막을 지켰던 그녀가 그와 만난 것은 지난 1965년이었다. 그는 열아홉 살, 그녀는 열여덟 살이었다.


그가 연기가 아닌 실제 삶을 통해 만들었던 첫사랑과의 50년간의 로맨스는 그가 연기했던 어떤 영화보다도 가슴 뭉클한 이야기로 남았다. 그는 유언처럼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내가 여든이 되면 흔들의자에 앉아 해리 포터를 읽고 있을 거야."

그럼 내 가족들이 이렇게 묻겠지.

"여태껏 계속?"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할 거야

"영원히...."




 

삶은 별게 없다. 그럼에도 한 권의 책을 읽는 것, 내 곁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고 지켜주는 것, 밤하늘의 별과 달, 꽃 한 송이를 바라보며 감탄하고 감사하는 것, 한 곡의 음악이 우리의 지친 영혼을 위로할 수 있음을 믿는 것.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끝까지 지키고 지켜가야 함을 다짐하며 실천하는 것. 그렇게 살 때 별게 없는 삶이 별게 있어진다. 그가 위대한 배우로 남았듯, 우리 삶도 위대해지리라.


작가의 이전글 과정없는 성취는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