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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Sep 28. 2023

곧 추석인데 내키지는 않고

며칠 전 한동안 연락이 없었던 사법연수원 동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추석을 잘 보내라는 덕담 인사차 한 전화였다. 너무 오랜만이라 "대뜸 오랜만이네. 왜 그동안 연락이 없었느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라고 물었다. 묻고 보니 '그럼 나는?' 내가 말하고도 내가 우스워졌다.


그가 연락이 뜸한 것을 뭐라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안부를 전했어야 했던 거였다. 남에게 바라기만 했지 내가 먼저 그에게 해줄 생각까지 미처 하지 못했다. 알량한 자존심인지, 내가 아닌 남에게는 무관심한 나의 이기적인 자세 탓인지,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니 부끄러웠다.  


그러고 보니 곧 추석이다. 명절이 기다려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도 굳이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후자에 가까운 편이다. 추석이 그다지 기다려지지 않는다. 벌써 또 명절이 오는 거야? 하는 심정이다.




명절이 그냥 피곤하다. 쉬는 기간도 짧지 않고(이렇게 말하니 마치 쉬는 게 별로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꼭 명절을 빌어 친지들에게 인사를 다니는 것도 귀찮다. 할 얘기도 없는데 억지로 무슨 말을 만들어내 서로 억지 관심을 유도하거나 마음에도 없는 안부를 묻는 것도 마땅찮다.


친척들도 자주 만나야 할 이야기도 있는 법인데, 명절에나 가끔 보니 서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거나 심지어 말이 엇나가기라도 하면 상처가 되는 말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을 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이 종종 연출되는 것이다. 대개는 같이 식사를 하고 TV 앞에서 멍하게 앉아 있게 된다.


다 제치고 어디 여행을 가는 방법도 있지만 천성이 게을러서 그런지 그것도 썩 내키지 않는다. 어쩌면 차가 막히는 게 싫어 어디를 갈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여행 준비를 하는 것이 귀찮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조용히 있고 싶은 거냐면 그렇지도 않다. 가만히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고 지루하고, TV를 보자니 그건 또 싫고. 이래저래 명절이 오는 것이 별로가 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기성 대세인 나도 이 모양인데, 요즘 세대들은 추석이라고 딱히 뭘 기대할 것 같지 않다. 그들은 긴 연휴 기간 동안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취미 생활을 할 생각부터 한다.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 따위의 음식을 장만하여 차례를 지내는 추석의 진정한 의미가 사라진지 오래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세월이 흐르면 의미는 변하기 마련이고, 그렇게라도 시간을 잘 보낸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니까. 부모 세대와 요즘 세대 사이에 낀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처럼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이 문제다.


그래도 명절인데, 이번에는 잘 보내야지 하고 마음을 다 잡아본다. 부족한 잠도 더 자고, 꼭 읽어야 할 책도 읽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들도 만나고. 틈틈이 좀 걷고. 뭐 그러려고 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그건 명절이라고 특별한 건 아니네,라고 반문한다면 맞는 말이라고 할 수밖에. 나에게 추석 명절은 특별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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