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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Oct 09. 2023

나무를 바라보는 동안 가슴은 고동쳤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어서 평소에는 더더욱 눈길을 주지 않는 나무. 그러나 나무만큼 제 몫을 하는 아름다운 생명체도 찾기 힘들다. 어디든지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오히려 그 흔함 때문에 간과되기도 하지만, 태풍이나 비바람이 몰아쳐도 언제나 같은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모습이 감동하기도 한다. 가끔 나무를 닮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으면서 혹시 나무에 대해 묘사한 부분이 나오면 유심히 보는 편이다. 다음은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 50P>에 나오는 글이다.


"언젠가 나는 교실 창문 밖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그리 크지 않은 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나무를 바라보는 동안 내 가슴은 고동쳤다. 그것은 놀랍도록 아름다운 나무였다. 끝이 둥그스름한 단정한 삼각형을 잔디 위에 쌓아 올리고, 촛대처럼 좌우대칭으로 손을 내민 수많은 가지가 그 묵직한 녹음을 받쳐주고, 녹음 아래에는 어두운 흑단 대좌처럼 흔들림 없는 나무줄기가 얼핏 내보였다.


완성된 교치(巧緻)를 빚어재며 게다가 '자연'의 저 우아한 방기(放棄)의 분위기 또한 잃지 않으며, 그 나무는 스스로가 그의 창조자인 듯 밝은 침묵을 지키며 서 있었다. 그것은 또한 명백하게 하나의 작품이었다."


작가의 어린 시절이 담긴 자전적인 소설. 그렇다면 작가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나무를 보면서 이 생각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문득 나 자신이 한심해졌다. 매일 바라보고 스쳐가는 나무에서 특별히 어떤 감흥이나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싱그럽다는, 기분이 좋다는 정도의 감상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바쁜 일상 속에서 나무라는 존재는 무시하고 살았다.


나무에 대해 이 정도로 깊이 있게 묘사하기 위해선 오래도록 나무를 관찰했을 것이다. 관찰한다고 저런 글을 쓰기도 어렵다. 작가의 독서량과 사색의 깊이가 느껴졌다. 책을 읽으면서 감탄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절망스럽기도 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내가 간과한 것,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작가는 섬세한 시선으로 나무의 특징을 포착해서 아름다운 문장으로 남겼다. 어떤 영상으로도 이보다 선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그의 역작 <금각사>를 읽고 다른 책을 읽을까 하다가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건, 뭔가 아쉽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대장성'이라는 그 시절 일본 엘리트들이 선호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로 접어들면서 처음으로 낸 책이 이 책이고, 이 책을 통해 일본 전후 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하니, 더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작가의 글이 내 취향과도 맞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류에 영합하는 가벼운 통속소설이 난무하는 요즘, 그런 유의 책을 읽어도 별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괜한 시간 낭비를 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후회도 되었고.


그래서 좀 더 이른 시기에 나온 책들을 먼저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미시마 유키오의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세월의 검증을 통과해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책이라면 뭐가 달라고 다를 것 같다. 나무에 대해 묘사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책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 아침,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오늘은 산책을 하게 되면 주변에 있는 나무를 유심히 살펴보리라. 그래서 미시마 유키오처럼 나무에 대한 나만의 뚜렷한 관념을 마음속에 각인시키리라. 언젠가 더 나이가 들었을 때, 그 관념을 떠올리며 오늘을 회상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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