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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Nov 12. 2023

내가 나무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어제는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그런지 몸과 마음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지나간 시간들이 떠올랐다. 오롯이 혼자 견뎌야만 했던 시간들.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올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때는 그저 그 시간들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랐었다. 그럴수록 시간은 더디 가고, 어제처럼 안으로 안으로 가라앉기만 했다. 힘들고 감당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늘 뭔가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려고 노력했는데, 그때는 도무지 어떤 의미조차 찾기 어려웠다. 아마 그때부터 걸었던 것 같다. 틈나면 걷고 또 걸었다. 뭐라도 읽었다. 아니, 읽어야만 했다. 나는 그 시간을 통해 단련되었을까. 아니면 무뎌졌을까.


한때 나는 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로 치부했다. 어쩌면 단풍이 아름답다 정도만 생각하고 그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정확하겠다. 그러나 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었다. 애써 애지중지 피운 잎을 떨구는 건 나무 입장에서는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일종의 자기부정이기 때문이다.


나무가 추위를 견디기 위해 가을 무렵부터 수분 흡수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잎에 고운 빛이 드는 것이 단풍이다. 겨울이 왔는데도 봄, 여름처럼 수분을 머금고 있으면 동상에 걸려 생명을 잃고 만다. 햇빛과 물로 생명을 유지하는 나무로써는 엄청난 결단이다. 생존을 위해 스스로 잎을 떨구고 힘든 겨울을 나는 것이다.


나뭇잎 역시 기꺼이 스스로를 버려 나무를 지킨다. 칼에 조금만 베어도 아프고 불편한데, 자기의 분신과도 같은 잎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인지, 자기가 기대고 의지하는 곳에서 떨어져 나와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 이제야 나무의 고통이 그리고 잎의 자기희생이 느껴진다.  


어쩌면 나에게도 지난 시간은 그런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그 상태로는 도저히 대책이 없으니, 인생의 겨울을 나기 위해 나의 일부를 버리고 잘라내야 했던 시간. 그렇게라도 거듭나서 새로운 봄을 맞으라고 하나님이 마련해 준 은혜로운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 시간을 잘 보낸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내가 보기에도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좋았던 인생의 황금기가 지나갔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다시 주어진 기회를 아깝게 소진한 나의 부덕함과 어리석음 때문이다. 과연 내가 나무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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