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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an 13. 2024

나의 약함을 확인하는 순간

지난 연말, 며칠 병원에 입원했다. 가족이나 지인이 입원해서 병문안을 간 적은 있었지만 내 문제로 병원에 입원한 것은 거의 처음이다. 입원실을 구하기 어려워서 간호사가 간병을 하는 다인실로 배정이 되었다.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간병이 필요할 정도로 중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단 며칠이니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방에서 생활해도 괜찮겠지 않을까 했던 거다.


착각이었다. 잠자리가 불편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옆 침대에 있는 사람이 조금만 뒤척여도 깨기 일쑤였고, 기침소리에 간간이 들려오는 휴대폰 벨 소리, 유튜브 시청 소리 등이 들려와서 좀처럼 편히 쉬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간호사들이 수시로 와서 열과 혈압을 재는 통에 한밤에도 편히 잘 수 없었다. 첫날밤은 거의 뜬눈으로 지새웠다.


병원에 들어오면 정상적인 사람들도 환자가 된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병실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팔에 수액과 보조 기구를 차고 있었고, 걷는 것도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처음에는 그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다음날 새벽 나도 수액을 맞게 되면서 일단 팔에 혈관 주사를 맞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행동에 얼마나 제약이 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보는 것과 내가 실제 경험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시술을 받는 날,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환자복에 수액을 맞고 있는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날은 여러 시간을 잠들어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


경과를 보기 위해 며칠 더 입원을 해야 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수액만 맞고도 살아간다는 것이 신기했다. 벌써 적응이 되었는지 이젠 잠자리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불편했고, 어서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입원 기간 중 기억에 남는 일은 내 옆자리에 있는 어르신이었다. 옆자리에 있어도 커튼으로 칸막이가 쳐져 있어 서로를 볼 수 없었지만 주치의가 회진을 돌 때 그가 어떤 상태인지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미 암 수술을 한 전력이 있는데 다른 부위에서 암이 재발해서 어떤 방식으로 치료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주치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저 사람 입장이라면 어땠을까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치료가 어려워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그는 의연했다. 아니, 의연한 척했는지도 모르겠다. 간간이 들려오는 가족들, 지인들과의 통화에서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또 기억에 남는 장면은 병원 복도를 걸으면서 우연히 보게 된 다른 병실 환자들의 모습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부터 외관상으로는 환자로 보이지 않는 사람까지 다양했다. 입을 벌린 채 곧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노인,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죽음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아프지 말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병원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건강해도 죽음을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고,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는 피하라는 늘 듣던 말, 그러나 그 말은 건강을 위해 지켜야 할 중요한 습관이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생명이 있는 동안은 아프지 않아야 한다.


소위 '건강 수명'이라고 하는데 아프면서 오래 사는 것보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적당히 사는 것이 더 나은 삶이다. 그러나 이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아프지 않으면 도무지 건강을 생각하지 않는 게 인간이고 그게 우리의 한계인 것을.


단, 며칠의 입원이었지만 나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병이 되었든, 진학이나 사업의 실패가 되었든, 고통 또한 우리 인생의 한 부분이다. 고통을 통해 나 자신을 생각하게 되고,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되고, 내가 한계를 지닌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니 고통이 주는 유익이 작지 않다. 그 의미를 찾는 사람은 그래서 그 순간을 그 힘으로 견디는 것일지도. 그 노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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