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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Feb 17. 2024

겨울, 나무의 침묵과 기다림

그제, 아침에 내리던 비가 점심 무렵에는 눈으로 바뀌었다. 하루 종일 흐린 날씨. 출근길에 본 하늘은 아침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두웠고 밤의 연장선상에서 기분도 덩달아 우중충해졌다. 출근길, 비가 올 때를 피해서 다행이라기보다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비가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최근 며칠, 겨울이 무색할 정도로 따뜻한 날씨가 이어졌다. 가벼운 옷을 걸치고 나가도 춥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눈에 비치는 풍경은 여전히 겨울이다. 잎은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는 나무들. 지난봄과 여름의 초록의 흔적이 어디 있는지 살펴보아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당장 봄이 온다고 해서 저 나무들이 무성한 잎을 맺고 초록이 풍성해지리라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주변 풍경은 삭막했다. 본연의 모습을 버리고 이 겨울을 버티는 나무들. 저렇게 해야만 생명을 간직할 수 있다니 새삼 그들의 변신과 끝없는 생명력이 놀라웠다.




문득 저 나무들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궁금해졌다. 손을 대봐도 딱히 뭔가 생명이 느껴지지 않았다. 바짝 말라 조금의 습기도 품고 있지 않는 건조한 모습. 과연 지금 이 순간에도 추위를 이겨내며 별다른 미동 없이 봄을 준비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내 눈에는 도저히 봄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긴,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앙상하고 건조한 나무가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푸른 잎을 맺고 멋진 초록의 나무로 탈바꿈하게 된다니. 가까운 봄, 풍성한 잎과 꽃으로 치장한 나무가 아무 생명의 흔적도 찾을 수 없는 말라비틀어진 지금의 모습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자연의 위대함에 마음이 겸허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따라서 우리도 겨울을 보내고 있는 나무들을 닮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지금 주어진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별다른 성과가 없어도 나무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까운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며 묵묵히 이 삶을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혹여,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담담히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게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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