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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Mar 26. 2024

잊었다가 다시 또 그리워하고

"어떨 때는 참을 수 없이 외로워져서 아무 기억이나 붙잡고 그것을 한참 동안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것들을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그러다가 다시 또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단편 정영수 작가의 <우리들>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고 문득 사랑의 끝은 그리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 성공했다면 옛 시절 사랑에 빠졌던 내 모습을 그리워할 테고, 실패했다면 사랑 그 자체를 그리워할 것이다.


지금 사랑하고 있다고 해도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항상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든, 떨어져 있는 순간 그리워진다. 따라서 그리움은 사랑의 필연적인 요소가 아닐까.


그리움은 사람을 힘들게 한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어떤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렬해지기도 하니까. 까맣게 잊었다가 불현듯 다시 떠오르고. 그렇게 그리워하다가 잊고 또다시 그리워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힘들다고 억지로 잊으려고 하는 것은 무용한 짓이다. 그리움 역시 충분히 내 안에 머물다가 보내주어야지 억지로 잊으려고 한다고 그리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의식할수록 더 그리워지고 그만큼 더 힘들어진다.


그리워지면 우선은 흘러가는 대로 두고 볼 일이다. 세월이 좀 더 흘러 언젠가는 모든 것이 빛을 잃고 희미해지겠지만. 그리고 그리워했다는 사실마저도 잊히겠지만. 잊었다는 사실 때문에 더 쓸쓸해질지 모르겠지만. 그러곤 이게 인생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럴 때 있잖아. 한창 물놀이에 빠져 있다가 뒤를 돌아보았는데 해안이 까마득히 멀어 보일 때.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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