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일이 나의 정체성의 전부일 수 없다

by 서영수

"내가 노년에 정말로 버리고 싶은 고물은 심리적인 고물이다. 한때는 내 삶에 의미를 주었지만 이제는 도움이 되지 않는 ‘오랜 확신’ 같은 것들 말이다. 예를 들어 지난 반세기 동안 내 정체성의 일차적 근원이 되어주었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될 때,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


이 글은 파커 J. 파머의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에 나오는, 나이 듦에 대한 에세이의 한 구절이다.


젊은 시절, 일과 나는 분리될 수 없는 일체였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였고 내가 일이었다. 그곳에 사생활이 자리 잡을 공간은 없었다. 사생활도 공을 위해 존재했고, 공과 사의 구분은 무의미했다. 일이 내 정체성의 근원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조차 사치스러웠다. 할 일이 늘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주말은 물론 휴일에도 일을 해야만 했다. 사명감과 오기로 버틴 시간, 돌이켜 보면 그 사명감이 무엇이었는지, 알량한 자기만족이나 헛된 우월감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따라서 파머의 이 고백은 나의 고백이기도 하다. 검사라는 옷을 벗은 지금, 나는 나 자신에게 묻고 있다. 그동안 내 정체성의 상징이었던 검사라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아니,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지금 내가 그렇듯이, 정체성이 흔들리면 삶도 흔들린다. 다수의 사람들이 추구하고 달려가는 그 길을 따라가 보지만 능력 부족에 힘만 부친다. 그동안 외면했던, 가보지 않았던 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의 정체성이 정확히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에서 보람과 삶의 가치를 찾아야 하는가? 이것이 요즘 나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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