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을 바꿔 보았지만

by 서영수

지난 주말, <모비 딕>을 읽다가, 지루해서(사실 쉽게 읽히지 않아서 그런 이유도 있다) 오랜만에 추리소설을 손에 집어 들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이다. 처음부터 술술 읽혔다. 문장도 어렵지 않고 전개 또한 빠르다. 하지만 막힘이 없어서 그런지,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지 헷갈렸다. <모비 딕>을 읽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모비 딕>은 바다와 고래를 배경으로 한 심오한 철학적 주제와 복잡하고 난해한 문체, 곳곳에 등장하는 은유와 상징 탓에, 한 문장 한 문장 그 의미를 새기면서 읽어야 한다. 반면 <용의자 X의 헌신>은 사건의 흐름, 즉 줄거리 중심으로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게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한테는 맞지 않았다. 평소 내 독서 스타일과는 다른 책이었다. 무엇보다 추리소설 특유의 작위적인 스토리 전개가 거슬렸다. 몇 장을 읽다가 책을 덮었다. 아직 시작 부분이라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 흥미진진해질지 모르겠지만, <모비 딕>보다 집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책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자신에게 맞는 것이 분명히 있다. 남들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나에게는 그저 그런 평범한 것으로 보일 수 있고, 오히려 그 아름다움이 지루함의 원인이 될 때도 있다.


일상의 단조로움을 피해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일상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이도 있다. 무엇이 맞는지는 각자의 취향과 성향에 달린 문제인 것이다.


<모비 딕>을 다시 읽으며, 비록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지만, 작가의 오랜 고뇌와 사색이 담긴 철학적 깊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정규 교육을 오래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 쓴 책이라고 도저히 믿기 어려웠다. 바다나 고래에 대해 직접적으로 경험하거나 깊이 생각한 적이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나에게 좋은 책이란, 결국 깊이 고민하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독자에게 이토록 풍부한 사색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작가는 책을 쓰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잠시 눈을 감고 어려운 삶 속에서도 불멸의 작품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허먼 멜빌의 모습을 떠올렸다.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이단으로 낙인찍혀 고난스러운 삶의 원인이 되었던 이 소설이, 사후에 빛을 보면서 죽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모든 영광을 생전에 누리려고 하는 인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리움보다 더 괴로운 것은 잊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