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윤수 Dec 14. 2022

나무의 고백

한돌의 시

겨울숲에 갔다

삼성산을 지나 무너미고개에 가니 벌써 4시 반

너무 늦게 시작한 산행이라는 핑계로 내려왔다

혼자니까 위험할 수 있다는 준엄한 경고가 있었다

소주 생각도 났다

계곡은 더 이상 이렇게 흐를 수 없다는 반감을 보이며

모두 얼어버리고

호수공원의 비단잉어가 따로 수조에서 월동한다는 팻말이 있었다

내가 별로 걱정하지도 않는데     


나무들 외로워 보였다

어떤 나무는 우중충한 바바리코트로 스트리킹하고 있었다

나무들은 서로 응시하며 시위하고 있었다

나무 틈새로는 감춰오던 도시의 민낯이 다 드러나 보였다

나무는 숲이 아니었다     

숲은 모두 나무였다


“우리는 원래 우리가 아니란다

우리는 하나하나가 외로운 나무란다

봄마다 보여줄 채비로 꽃 한번 피우면서 뽐내보고

여름에는 숲처럼 뭉쳐 있으면서 무언가 감추고 있지

가을에 각자 색깔 내어 각자 다른 모습 보여주다가 곧 떨구고”     


“겨울에는 원래 모습이 된단다

모두 빈털터리란다 

하지만 모두 나이테 하나 두르고

허리 좀 굵어지고”     


그렁저렁 나무마다 눈물이 맺혔다

    

“그래도 봄이 기다려진단다”     


그때는 볼만하다며 다시 오라고 한다     


나무의 하늘에는 끝없이 비행기가 날아다녔다   


(봄 밤 꿈) 픽사베이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풀과 불, 그리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