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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수 Jun 26. 2024

권력과 정의에 대한 생각 4 : 해바라기 정책(?)

한풀이 23 (정·경 12)

1. 들어가는 글     


이번 ‘권력(power)과 정의(justice)’ 사례는 의대 증원 문제다. 이 문제의 본질이 무얼까 생각하다가 ‘해바라기 정책(?)’으로 정의했다. 당초 제대로 된 계획이 있었나?부터 의문인데, 총선을 앞두고 갑자기 내년부터 2천명(종전 정원의 2/3)을 늘린다는 말 외에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의대정원 확대를 기정사실(fait accompli)로 하고 지금껏 공권력(힘)으로 밀어붙였지만, 결국 어느쪽도 승리하지 못한 채, 국가적 실패사례로 남을 것 같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멈추고 제대로 조사 연구하고나서 새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정당이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 (정당법 제2조)이다.


그런데 이번 일에는 책임있는 주장이나 정책,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을 해야 할 정당이 빠져 있었다. 이 글에서는 최근 언론 보도를 살펴보고, 선거와 정당제도 개혁에 대한 생각도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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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대 증원과 나쁜 권력의 모습     


어쩌다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의료개혁’인지 ‘의료개악’인지 본질이 의문스러운 사안이 올 상반기 내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여기에는 무작정 막무가내 정부 외에 여야 정당도,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는 언론도 없었다. 그러다가 이제껏 세계의 부러움을 받으며 잘 나가던 K-의료가 총체로 엉망이 되었다. 이것은 의사와 非의사(일반인) 로 나눈 편가르기 여론조사와 중우정치(衆愚政治)가 빚은 비극이다.     


이제 의대생은 유급되고, 전공의도 포기한 모양새인데, 내년에는 (증원을 하든지 말든지 간에) 2년 치 인원을 한 해에 교육해야 되는데 이게 가능할까?     


대거 증원이 예정된 지방의대에는 교수도 강의실·실험실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데, 어떻게 가르치나? 이공계나 다른 분야 학생들이 의대에 가겠다며 반수에 들어가 다른 분야에도 연쇄적 부작용이 있다는데, 국가백년대계라는 교육을 이렇게 엉터리로 다루는 나라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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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근 언론 보도가 바뀌었다     


최근 언론 기사를 옮긴다. 얼마 전까지도 이런 기사가 없더니, 이제 언론이 사태가 정말 심상치 않은 걸 느낀 모양인가? 이국종 대전국군병원장, 의료계 원로 5인, 신찬수 전 서울의대학장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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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종 의료계 벌집 터져전문의 없어질 것(주간경향 6월 22일)

“의대생 늘린다고 소아과 가겠는가.” (김찬호 기자)     


이국종 대전국군병원장이 의과대학 정원 확대 문제를 두고 지난 6월 19일 이렇게 말했다. 이날 이 병원장은 “현재 의료계는 벌집이 터졌고, 전문의는 더 이상 배출되지 않아 없어질 것”이라며 “의사 교육은 강의식이 아닌 선후배 간 일 대 일 도제식으로 이뤄져 함부로 많은 수를 양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0년 전과 비교해 소아과(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3배 늘었고, 신생아는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지만 정작 부모들은 병원이 없어 ‘오픈런’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의대생을 200만명 늘린다고 해서 소아과를 하겠느냐”고 덧붙였다.     


해당 문제를 두고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의료계는 정부의 정원 확대 방침에 집단 휴진으로 맞서고 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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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원로 5"현재 시스템이면 증원해도 결국은 의료 붕괴

(조선일보, 6월 24일)     


법원이 최근 “의대 증원은 공익에 부합한다”는 결정을 내린 데 이어, 서울대병원 교수들도 21일 무기한 집단 휴진 중단을 발표하면서 정부의 ‘1509명 의대 증원’은 사실상 확정됐다. 외형상 정부가 승리한 모양새지만 대다수 의사는 “이대로면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 의료가 붕괴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는 의대 증원이 ‘의료 개혁’의 핵심이라는 입장이지만 현장 의사들은 “증원은 부차적인 문제”라며 “더 크고 근본적인 문제를 고치지 않으면 증원은 독(毒)”이라고 하고 있다. 의료 개혁은 지금부터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에 본지는 의료계 원로 다섯 명에게 우리나라 의료를 살리기 위한 방안을 들었다. 김한중 전 연세대 총장(예방의학과), 이철 전 연세대의료원장(소아청소년과), 송시헌 전 충남대병원장(신경외과), 김종성 강릉아산병원 교수(신경과), 배장호 건양대의료원장(심장내과)이 제언했다. (*글이 긴 탓에 앞부분만 옮겼다)


①수가는 올리고 소송 부담은 줄여야     

이들은 소아과·산부인과·응급의학과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와 낙후된 지역 의료를 살리려면 파격적인 수가(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 인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②대학 병원 살려야

이들은 “세계적 수준의 국내 대학 병원을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고도 했다. 김한중 전 총장은 “미국 뉴스위크지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 최고 병원 250곳 중 우리나라 병원이 2024년엔 17개였다. 우리나라는 매년 3~4위를 기록했다”며 “낮은 수가와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척박한 환경에서, 의료진의 몰입과 헌신이 이뤄낸 놀라운 성과”라고 했다.


③2026학년도 증원은 의료계와 논의

내년도 의대 증원 조정은 어렵더라도 2026학년도 의대 증원부터는 정부가 의료계와 재논의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④‘이탈 전공의 처벌 않겠다’ 발표해야

이들은 지난 2월 말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 이탈한 전공의 1만여 명에 대해서 정부가 ‘복귀 여부와 상관없이 처벌하지 않겠다’고 밝힐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부는 복귀 전공의에게만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⑤필수 의료 흔드는 실손 보험

필수 의료를 위축시키는 실손 보험 왜곡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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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밥그릇에 눈먼 의사로 몰려지금 상태론 복귀 불가능

(조선일보, 안준용기자, 6월 25일)     


전국 의대 학장 모임인 KAMC(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신찬수(62) 이사장은 24일 본지 인터뷰에서 “많은 전공의는 정부가 각종 행정명령으로 압박하고 사직서 제출을 ‘밥그릇 지키기’로 몰아가 직업적 자긍심을 뺏어갔다고 생각한다”며 “의대 정원에 관한 논의 없이 이미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이들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신 이사장은 2017~2021년 서울대 의대 학장을 지냈다. 그는 “전공의 일부라도 돌아오게 하려면 정부가 의사 수급 추계 기구를 통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의대 정원 논의를 약속해야 하고, 전공의 수련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계획도 구체적 재원 마련 방안까지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전공의·의대생 이탈이 장기화하고 있다.

“2000명 증원이란 숫자와 정부의 일방적 추진 때문이다. 2000명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하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정부가 소통해야 하는데 발표 전후 그런 과정이 없었다. 돌아온 것은 사직서 수리 금지, 업무 복귀 명령이었다. 큰 상처를 받은 것 같다.”     


-어떻게 해야 돌아올 수 있을까.

“가늠이 안 된다. 다만 일부라도 돌아오게 하려면 정부가 지금이라도 전공의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7대 요구 사항 중 ‘의대 증원 백지화’ 빼곤 다 추진 중이라지만, 전공의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나.

“정부는 전공의 수련 환경을 개선하고 전문의 중심 병원을 만들고, 필수의료 지원을 대폭 늘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무슨 돈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건보 재정은 뻔하다. 그간 필수의료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 인상 등 정부의 많은 약속이 제대로 안 지켜졌다. 신뢰가 없는 상태다.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도 재원을 포함해 구체적으로 약속해야 한다. 건강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면 지지율이 떨어지더라도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공론장은 이미 마련됐다.”     


-이대로 증원된다면 교육 현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실습이다. 지금도 의대생들은 병원 실습 때 낄 자리가 없다. 그냥 둘러보고 간다고 해서 ‘관광 실습’이란 말도 나온다. 두 배로 늘면 어떻게 되겠나.”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국민이 질 높은 의료 혜택을 더 쉽게 받도록 하는 것이 목표 아닌가. 2000명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한데, 본말이 전도돼 버렸다. 사태가 길어지면 정부가 살리겠다는 필수의료 분야가 더 망가진다. 각종 행정명령서를 받아든 필수의료 전공의들은 피부·미용 의료에 있는 선배들을 보며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었나’ 생각하게 됐다. 필수의료 자격증을 가진 의사들이 왜 자기 분야를 떠날 수밖에 없는지 제대로 살피는 게 먼저다. 미래를 책임질 전공의가 없으면 피땀으로 쌓아올린 우리 의료도 후퇴할 수밖에 없다. 환자, 국민, 의료계 모두에게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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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책임정당 이야기     


책임정당이라는 책은 정당이 나서서 어려움에 빠진 민주주의를 구해 내자고 한다.      

* 『책임정당: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 구하기』 프랜시스 매컬 로젠블루스·이언 사피로 지음, 노시내 옮김, 후마니타스, 2022년     


이 책에서 인상 깊은 문장 몇 개를 그대로 옮긴다.     


좋은 공공정책에 초점을 두는 사람이라면, 실현 가능성과 책임성 있는 정강 정책을 놓고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기 위해 경쟁할 수 있는 규율 잡힌 두 개의 정당(또는 선거연합)을 만들어내는 선거제도를 옹호하게 된다. (16쪽)     


건강한 민주주의는 크고 강한 정당에 의존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당은 잘못된 집단들 틈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잘못된 사항에 관해 경쟁한다. (27쪽)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 문제를 전통적인 웨스트민스터식 절차에 맡겼더라면 2016년 6월 국민투표로 탈퇴를 결정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두 주요 정당(노동당과 보수당)의 다수 의원들은 유럽연합에 남기를 원했으며, 만약 의회에 결정권이 있었다면 브렉시트는 부결되었을 것이다. (87쪽)     


전 세계의 대중은 정당이 유권자와 유리되어 당파적 이익을 위해 대중의 복리를 희생하고, 더 나쁘게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자기 배를 불리는 욕심 많고 야심 많은 지도자를 키워낸다고 비난한다. (289쪽)     


각각의 정치체제를 민주적 경쟁의 목적을 향해, 더 나은 공공 정책을 위해 책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끄는 개혁안을 지지한다. 이를 위해서는 선거에 앞서 광범위한 유권자 집단의 장기적 이익을 위한 일단의 정책을 약속할 수 있는 책임 정당을 구현해야 한다. (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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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당은 이 책에서 말하는 ‘크고 강한 양당제(웨스트민스터 체제)’인데, 이게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는 것은 대통령이 국회나 정당 등 무엇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빨리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쳐야 한다. 왕(王)에서 대통령으로 바꾸어야 나라가 산다. 헌법을 개정하자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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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과두제의 철칙(iron law of oligarchy)      


미헬스(Robert Michels)는 1911년 발간된 『정당론: 근대 민주주의의 과두제적 경향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에서 대규모 조직과 민주주의가 양립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사회주의 정당이던 독일사민당에 대한 연구를 통해 조직이 비대화될수록 소수의 지배가 강해지는 과두제(oligarchy)가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선출된 이들이 그들을 선출한 이들에 대해, 위임을 받은 이들이 위임을 부여한 이들에 대해, 그리고 대리자들이 대리를 맡긴 이들에 대해 지배(dominance)를 낳는 것이 바로 조직이다. 조직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곧 과두제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 『정당론』 강원택 지음, 박영사, 2022년, 143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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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당의 과두제는 여당은 ‘윤심 운운’, 야당은 ‘명심 운운’으로 나타나듯이, 정당이 친윤 반윤, 친명 반명 등 찬성자와 반대자가 대립하여 정당 운영이 민주적이지 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고쳐야 하는데---      


헌법(제8조 제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면 정당 해산 사유라고 규정한다. 우리 정당들은 과두적 운영을 넘어 독재적 운영인 것 같은데 이걸 어쩌나 큰일이다.      

정당과 선거제도를 제대로 손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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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복수정당제와 중선거구제     


나는 우리 정치현실에서 소선거구제 대신 중선거구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우리의 소선거구제는 지역주의 정당으로 나타난다. 지역에 뿌리를 둔 특정당이 특정 지역 의석을 다 차지하여, 국가 대표라기보다 지역 대표 역할을 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정당의 지역성이 국민화합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나는 우리의 통일이 멀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북통일이 되면 남북 모두 다양한 정치세력을 포용해야 한다.     


전국을 2명 단위(원칙적으로 2명이지만 필요시 3명도 가능) 중선거구로 나누고, 각 정당은 지역구에 1명만 공천할 수 있게 하자. 이로서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남북통합의 모멘텀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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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의대증원을 멈추고, 새로 시작하자     


최근 의대증원에 관한 언론보도는 내가 전부터 지적한 방향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런 보도가 왜 이리 늦었는지도 의문이다. 언론의 권력눈치보기가 아니었을까?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에 써둔 브런치글이다.


드디어 벌어진 의대정원 증원, 개혁인지 대란인지 (brunch.co.kr)

 (2024년 5월 30일)          


초일류 K-의료는 의대증원이 아니라 이런 모습 (brunch.co.kr)

 (2024년 3월 22일)


여기에 막무가내식 행정 독재가 있었다. 해바라기식 눈치보기로 엉터리 일이 계속되었다. 4월 10일 총선이 끼어 있는 바람에 정당들이 증원찬성이 압도적이라는 여론의 포퓰리즘에 빠졌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민에게 책임져야 한다(헌법 제7조). 그들이 대통령 심기에 맞춘 모양인데, 이 부분에 대한 신상필벌이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여기서 멈추고, 제대로 다시 조사·연구해서 내년 이후에 하자. 지금껏 발생한 모든 사안을 백서로 남겨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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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글 ‘진짜 우리 지정학을 생각한다’ 2024년 7월 3일에 게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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