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호 속에서 벗어나자.
생각해보면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쉬웠지만, 나의 잘못임을 인정하며 죄송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입을 떼려고 하면 무언가 풀로 붙은 것처럼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차라리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넘어가는 일이 더 많으면 많았지 군대의 죄송합니다 격인 시정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다시 떠올려보니 어떻게 넘어갔나 싶기도 하다.
간호사로 일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말을 하는 것 중 하나는 '잠시만요', '기다려 주세요'이고 또 하나가 있다면 '죄송합니다.'이다. 뭐가 그렇게 죄송하기에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던 걸까. 직장 생활을 하기 전에 인생에서 말했던 죄송합니다의 총횟수보다 직장에 들어오고 나서 한 죄송합니다가 월등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나의 잘못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도 또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고는 깨닫게 되었다. 죄송하다는 말에도 종류가 있음을.
응급실에서 환자, 보호자와 싸우게 되는 이유 중 단연코 가장 많은 경우는 응급실 내의 진료 절차에 대한 불만이다. 대중들에게 응급실이란 무엇이든 '빨리빨리'가 가능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피검사 결과가 2시간 이상 소요될 수 있다고 설명하는 순간부터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거기에 더불어 CT 검사라도 하게 되면 결과까지 기다려야 하므로 추가로 4-5시간은 소요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고 검사 결과 후 타과(응급의학과 외의 다른 과)의 진료를 추가로 봐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면 오늘은 집에 못 가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정도이다. 이런 이유로 '왜 이렇게 진료가 빨리 되지 않습니까?', 혹은 '도대체 의사는 언제 오는 겁니까? 빨리빨리 좀 부르세요.'라는 등의 불만 사항은 간호사를 대상으로 빗발치게 되고 우리가 항상 하는 말은 '그 부분은 제가 해결할 수 없으니 기다리세요.'라는 답변뿐이다.
사실은 저 말에서도 죄송하다는 의미는 이미 담겨있다. (죄송하지만) 그 부분은 제가 해결할 수 없으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저 괄호를 없애는데 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응급실 절차와 응급실의 프로토콜을 모르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에 걸린 시간이나 마찬가지이다. 객관화가 그렇게 어려웠다. 나 또한 응급실을 방문한 기억이 없었기 때문에, 나라도 마찬가지로 그런 항의를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내가 내 의무를 철저히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최대한 꼼꼼하게 진료 안내문에 있는 글을 설명하였고 그때그때 환자의 진료 상황 및 진행 상황을 알리었고 그러면서 환자 보호자의 이해심은 깊어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만사항이 나올 때가 있었지만 내가 그렇게 행하지 않고서 했던 위의 말보다 나의 의무를 다했을 때의 '죄송합니다' 한 마디가 훨씬 더 효과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어차피 내가 진심으로 하지 않는 말은 상대방도 진심으로 느끼지 못한다. 내가 그 말을 진심으로 하기까지 내가 그 사람에게 보여온 나의 민낯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분명 난 그 말을 내뱉기 전까지 진심으로 행동하고 표현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그렇지 못했다면 애초에 진심이 담긴 표현은 항상 괄호 속에 머무르기 마련이다. 괄호 속 진심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내가 괄호 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괄호 속을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나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한 발 자국, 두 발 자국 뒤로 물러나면 남이 보는 내 모습이 보이게 될 테니까.
그러면 진심을 다한 다는 것이 어떤 건지 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