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ydia Youn Jul 22. 2020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당신은 나의 뮤즈가 아닙니다. 당신을 만난 이후부터는 아무것도 그리고 쓸 수가 없었습니다. 붓이나 펜이 잡아지지가 않더라 말입니다. 붓과 펜을 잡게 하던 많은 사람들을 압니다. 그들은 나의 뮤즈였습니다. 당신이 언젠가 제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왜 나에 대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지는 않는 거지?"


 저는 당신에게 차마 당신이 저의 뮤즈가 아님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게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매우 다르답니다. 물론 사랑에 빠지면서 만들어낸 것들도 있죠. 하지만 사랑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답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게 하는 사람, 글을 쓰고 싶게 하는 사람, 춤을 추고 싶게 만드는 사람, 요리를 해주고 싶은 사람.. 저에게 당신은 뭔가를 해주고 싶은 사람이기보다는 그저 함께이고 싶은 사람입니다.




"나는 당신이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좋아."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봤답니다. 내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좋은 사람. 저는 그 말을 집에서 곱씹어보면서 당신이란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믿음을 주는 사람인지를 떠올려보았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영감보다는 믿음을 주고 있던 사람입니다.




 저는 길가의 풀도 사랑합니다. 길가의 풀을 보며 글을 쓰기도 한답니다. 길가의 풀에 앉은 이슬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답니다. 누군가가 밟고 지나간 아픈 구석들을 뒤적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당신만은 섣불리 제 글과 그림에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어떤 이를 증오하며 그림을 그렸던 적이 있습니다. 증오했던 대상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제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너뜨리는 사람들이 대다수지만 가장 큰 증오는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싫을 때마다 일부러 붓을 잡고 펜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나도 당신이 나에 대해 써준 글을 읽고 싶어!"


 당신이 말합니다. 믿음을 주는 사람. '당신이 보았으면 좋을만한 글'을 써줄까, 혹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볼까' 고민했답니다. 미안하게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해버렸네요. 하지만 당신 곁이라서 정말 행복합니다. 당신이라는 사람이 있어서 정말이지 행복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나랑 만날 거야?"


 당신이 귀엽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물음 따위 무슨 수용이 있냐던 저였답니다. 저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여기서 하려고 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정말 행복하고 싶다면 당신과 함께할 것 이라고요. 당신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답니다. 행복의 농도는 조금 달랐습니다. 너무 짙어서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농도의 행복과 은은하게 오래 묻어둔 옅은 행복의 색을 다 가지고 있는 우리가 좋습니다. 너무 짙어서 금세 질식하는 건 여러모로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너무 옅어서 색이 구분이 안 되는 행복은 재미가 없죠. 당신은 모든 색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에게서 처음 보는 빛깔의 색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은 아주 자주 보았답니다. 널을 뛰고 있는 제 앞에 다가온 따뜻한 바람 같던 당신. 당신의 바람을 만난 건 여름이었지만 여름에 만난 따뜻함도 좋았습니다. 겨울에 조금 차가워지는 당신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좋을 것만 같습니다. 제가 대답합니다.


"그럼!"


 

매거진의 이전글 아름다운 자유보다 달콤한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