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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dia Youn Aug 26. 2022

붙잡아야 할 기억과 해소되지 못한 마음들

 나는 항상 내가 눕는 침대를 어지르곤 한다. 내 방의 침대는 슈퍼싱글 사이즈. 내가 혼자 눕고도 충분한 공간이 남는다. 오늘 침대 위에는 머리핀과 티슈 곽, 옷가지들, 수건, 인형 두 개, 화장품, 마사지기, 안약, 신용카드 등등이 있었다. 가끔은 책을 몇 권씩 쌓아 놓기도 한다. 이렇게 어질러진 침대 위에서 잠을 자려면 그 모든 물건이 없는 나머지 공간에 몸을 뉘어야 한다. 당연하게도 자리가 좁다.


 파리에서 혼자 여행을 하던 어느 날은 퀸 사이즈 침대를 어찌 그리 잘도 어지럽혔다. 누군가와 같이 자는 것보다 더 좁게 책 가지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곤 했다. 너무 커다란 침대를 혼자서는 채울 수가 없어서 뭐라도 올려놓고 싶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나는 그날 침대 한 귀퉁이에서 잠이 들었다.


 오늘은 인형을 제외하고 침대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내던졌다. 책상 위로든, 서랍으로든, 그냥 바닥으로든. 아마도 내 뇌와 마음도 내 침대와 같지 않을까. 나를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을 붙잡으려다 오히려 불편해지곤 하지 않았던가. 붙잡아야 할 기억들이 많아지고 해소되지 못한 마음들이 많아질수록 나 자신의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놓아주어도 좋을 기억들은 바닥에 내던져진 수건처럼 놓아버릴 수 있기를. 해소되어야 할 감정의 잔해들은 침대 밖으로 제쳐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물건들처럼 나의 밖으로 빠져나가기를. 오늘은 잠이 잘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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