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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Mar 31. 2022

위기와 인식은 왜 같이 하지 않는가?

왜 슬픈 상황이 한참 지나야 눈물이 나는가?

지난주 일요일 오후부터 목이 잠기기 시작했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누적된 피로 탓에 일찍 자리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간질간질해오고, 목소리는 3도 정도 낮아진 저음 베이스톤으로 변했다. 일교차가 심해지는 환절기라고 치부하기엔 미묘한 몸의 변화를 감지했다.


월요일 오전에 출근해서 바쁘게 다니다 보니, 군대 시절 더블백 메고 행군하다가 비에 흠뻑 맞은 군인처럼 온몸이 무거워졌다. 드디어 내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로 느껴졌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오후부터 허리도 약간 아픈 것 같았다. 회사에서 먼저 확진이 된 직장동료에게 물어보니, 코로나 양성 초기 증상과 매우 유사했다. 목이 간지럽고, 목이 잠기고, 기침이 간헐적으로 시작했다. 혹시나 모르니 화요일 휴가를 냈다.


일찍 출근해서 집에 왔다. 목은 점점 따끔거렸고, 갑자기 오한이 들어 이빨을 떨면서 전기장판을 켜놓고 밤새 오들오들 떨면서 하룻밤을 보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별 진료소에서 자가검진키트를 받아서 주차장에서 검사를 했다. 다행히 “음성”이었다. 기분 탓이었겠지.. 이런 맘으로 다시 집에 가서 한참을 누워서 빈둥빈둥거렸다. 매년 나에게 찾아오면 환절기 몸살일 거라고 생각하며 화요일 밤에 오들오들 떨면서 하루를 보냈다.


수요일 새벽에 일어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자가검진키트로 검사를 했다. 그래도 한 이틀 아팠더니, 제법 이제 살만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검사를 하고, 검사 키트만 쳐다보았다. 덜커덕.. “양성”이었다. 출근하려고 옷까지 다 입고 있었는데,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올 것이 오고 말았다. 그리고 그 후에 과정은 집 근처에 병원에서 신속항원검사를 받고 공식적으로 “양성” 판정을 받고, 5일 치 약을 처방받고 7일 동안 기나긴 자가격리에 들어섰다.


큰 방에 홀로 누워 생각했다. 왜 가장 아플 때에는 음성으로 나오고, 이제 살만하니깐 양성이 나오는 것인가? 제일 아팠을 때에 양성이 나왔으면, 약도 미리 챙겨 받아서 수월하게 지냈을 텐데, 왜 실컷 아프고 나서 살만하니깐 양성이 나왔을까? 하는 의문을 했다. 또 쓸데없이 왜 인간은 위기의 절정의 순간에 왜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건가? 왜 항상 뒷북을 치는 것일까?


왜 40대 중년 아저씨는 매일 과로와 과음으로 몸을 지치게 만들고 나서 병이 나서야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 왜 잘 나가는 기업이 중요한 의사결정이나 인수합병을 잘못하고 나서야, 그 위기를 깨닫게 되는 것일까? 그나마 위기가 지나서야 위기를 깨닫게 되는 건 다행이고, 대부분은 그게 스스로 자초한 위기인지 조차도 모르고 넘어간다.


왜 우리는 이렇게 위기의 절정의 시기에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위기의 절정이 지나서야 그걸 깨닫게 되는 것일까? 왜 부모님이 아프시고, 돌아가셔야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 왜 아이들이 다 커서야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한 시간들을 후회하는 것일까? 어리석은 나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인간이어서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와서, 우리 몸은 우선 바이러스와 열심히 싸우는 일을 한다. 그래서 그 싸움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싸움의 결과가 염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가장 우리 몸을 괴롭히고 있는 그 시간에 우리의 몸은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수많은 전쟁의 상처를 남긴다. 기침, 오한, 가래, 몸살 등의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그 염증의 시간이 지나서야 그 상처가 인식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슬픔의 상황이 몰려와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슬픔이 내 몸 와 마음을 다 할퀴고, 나를 휘젓고 나서 염증을 일으킨 후에 그제야 눈물이 난다. 나를 끔찍이 사랑하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가시고 한 달 정도 지난 후에 다시는 볼 수도 없고, 말할 수 도 없다는 사실이 상처가 되어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왜 우리는 위기와 인식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게 야속하기도 하다. 그게 안타깝기도 하다. 하지만 때론 슬픔의 상황이 지나간 후 눈물을 흘릴 때마다 나도 살아있는 인간임을 절감한다. 그렇게 난 7일의 자가격리를 통해서 좀 더 센터해져서, 일상으로 복귀했다. 7일 만에 아파트 주차장 위로 나와서 만난 활짝 핀 벚꽃을 보며 더욱더 느꼈다.


올봄에는 지나간 봄을 아쉬워하지 말고, 다가오는 봄을 만끽하기로 했다. 슬픔은 뒤에 느끼고, 기쁨은 바로 느껴보기로 한다. 그게 내가 코로나 양성 판정으로 7일 격리 동안 깨달은 나만의 방식이었다. 어서 오라! 봄이여.. 슬픔이여 안녕.. 기쁨이여 오늘 함께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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