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소 Aug 14. 2017

[방송도감#9] KBS <다큐멘터리 3일>

‘先’작업과 ‘後’작업을 최소화 하다. VJ가 담아내는 72시간의 현장

[프로그램 소개]



다큐멘터리 3일은 제작진이 관찰한 72시간을 50분으로 압축해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한 공간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시나브로 스며드는 시간 3일. 스쳐 지나가며 마주하게 되는 생생함,

우연 속에 발견하는 진심을 만난다. 

한 공간이 가진 시간의 흐름 위에서 '진짜'를 마주하고 해석하는 과정.

일상에 파묻혀 주변을, 스스로를 놓치고 살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던지는 새롭고 따듯한 시선이다. 

어쩌면 당신이 평생 모르고 지나갈 공간들, 당신 곁에 두고 관심을 갖지 못했던 사람들, 

그래서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출처 : 공식 홈페이지- 


   


‘선(先)’작업과 ‘후(後)’작업을 최소화 하다

VJ가 담아내는 72시간의 현장, 

<다큐멘터리 3일>



[한정된 시간과 공간에서 마주하는 특별함]


<신의 선물-14일>, <투윅스>, <1박2일>, 그리고 <다큐멘터리 3일>

드라마, 예능, 다큐멘터리까지 장르가 제각각인 이 프로그램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한정된 시간’ 동안에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효과는 분명하다. 드라마에서의 한정된 시간은 미션 수행 기한으로 작용하면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준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청자들은 손에 땀을 쥔다. 예능과 다큐멘터리에서는 실제로 주어진 시간 안에만 촬영한다는 점에서 현장감, 즉 ‘리얼리티’를 살려낼 수 있다. <1박 2일>이나 <다큐멘터리 3일>에서 ‘한정된 시간과 공간’은 그 자체로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포맷이 되었다. 예능과 다큐멘터리 분야 모두에서 리얼을 추구해가는 트렌드 속에서 두 프로그램은 실제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나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담아낼수록 좋은 프로그램일 가능성이 큰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라는 장치는 더욱 매력적이다.      


<다큐멘터리 3일>은 정확히 3일, 72시간 동안 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실제로 몇 년이 지나도 제작진들 사이에서 그 룰이 깨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정말인지는 제작진들만 아는 비밀일 테지만,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모든 상황이 설정이 아닌 ‘리얼’이라고 믿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1일차 낮 12시를 시작으로 해서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자막으로 몇 시간이 지났는지 표시해준다. 별것 아닌듯한 이 ‘한정된 장소와 시간’이라는 장치는 실제로 매우 신선하며,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같은 장소에서 3일 촬영하면 지루하고 ‘뻔’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큐멘터리에서 ‘리얼’의 힘을 무시하면 안 된다. 그 장소에 모이는 사람들은 모두가 제각각 다른 사연을 가지고 그 장소에 머무는 사람들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즉석에서 인터뷰하며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때, 계획되지 않은 돌발성과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에 시청자들은 의외를 재미를 느낀다.



[사전 촬영 구성안은 'NO'!]


섭외하는 장소는 매 번 특성이 다른데, 평소에는 갈 수 없는 조금 특별한 곳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평범한 곳이기도 하다. 특별한 장소에서는 의외의 평범함과 보편적 감정을, 평범한 곳에서는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특별함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그렇다면 제작진들은 ‘특별한 공간에서 만날 평범함’을, 또는 ‘평범한 공간에서 만날 특별함’을 미리 치밀하게 구상해서 가야 하는 걸까? 불가능한 일이다. 작위적인 연출을 보여줄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막상 그 장소에 가서 카메라를 들이밀었을 때 어떤 사람을 만날지, 어떤 사건을 맞닥뜨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때문에 <다큐멘터리 3일>의 제작진들은 사전답사를 통해 ‘촬영 point’만 표시할 뿐, 촬영 구성안은 구체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단, 장소 선정은 가장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전 준비 단계이다. 지금껏 인기가 많았던 에피소드들을 보면 노량진 고시촌, 강남의 성형외과, 706번 시내버스, 시장, 붐비는 지하철역 등이 있다. 장소 선정 이후 사전 답사를 통해 ‘대충 어떠한 그림이 나올 것이다’를 그려본 뒤 본격 촬영에 나선다.      


그런데 모든 다큐멘터리들은 원래 날 것 그대로 리얼을 찍는 분야가 아니던가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특별히 <다큐멘터리 3일>이 가지는 성격이 부각될만한 것인가 말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를 마치 CCTV와 비슷한 성격을 지녔다고 생각하겠지만, 다큐멘터리도 엄연히 스토리텔링과 연출을 통해 만들어지는 일종의 영화이다. 실제 주인공과 실제 장소, 실제 이야기를 다룰 뿐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휴먼 다큐멘터리들은 이미 ‘드라마화’, ‘예능화’된 것들이 많다. 그냥 자연스럽게 찍은 것보다, 의도와 연출이 많이 개입된다는 뜻이다. 기존의 휴먼다큐멘터리들은 촬영 구성안에 많이 의존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휴먼다큐멘터리로 손꼽히는 <인간극장>은 5부작으로 분량을 확실히 나누어야 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촬영 구성안을 짜놓고 촬영을 나가야 했다. 다큐멘터리 계에서 또 하나의 트렌드를 이끈 <VJ 특공대>는 보다 더 완벽하게 사전에 기획된 것들만을 촬영한다. 음식점을 찍는다고 하면 ‘만드는 과정 -> 음식이 나올 때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 그 사람이 누구이건 간에 맛있게 먹는 포즈를 취하게 한’ 뒤 촬영한다. 다른 소재의 내용을 봐도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 계속 등장한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촬영보다는 선후(先後) 연출 과정에 비중을 두는 프로그램이다. 이처럼 휴먼 다큐멘터리들이 가지를 뻗어가며 ‘드라마화’, ‘예능화’ 되어가는 흐름 속에서도 <다큐멘터리 3일>은 꿋꿋하게 사전 기획을 최소화하여 자연스럽고 리얼한 모습을 담아내는데 주력한다.



[작위적인 영상 연출도 ‘NO'!]


<다큐멘터리 3일>, 이미 제목에서부터 스펙터클한 연출은 기대할 수 없게 한다. 정말 3일간의 시간의 순서에 따라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구성을 배제하고 1시간 HDV 6mm 테이프 60개 분량을 1시간으로 압축 편집하여 현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시간 순서 그대로 생생하게 보여 준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이다. 영상 편집, 연출로 감동적이거나 인위적인 스토리라인을 만들어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촬영해온 영상들의 순서를 바꿔 연출할 수 없다고 해서 스토리를 만들지 못한다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 자연스럽고 리얼한 영상들에 감성적인 내레이션이 입혀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최고의 연출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다큐멘터리 3일>에서 내레이션을 쓰는 작가의 역할은 매우 크다. 내레이션이야말로 <다큐멘터리 3일> 제작에 있어서 가장 연출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내레이션 성우는 매 에피소드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섭외한다. 주로 감성적이고 시적인 멘트로 우리가 일상 속에서 쉽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장소에서 특별함을 포착해낸다. 영상 연출이 아닌 사람의 목소리만으로도 스토리텔링과 연출은 충분히 가능하다.



[<다큐멘터리 3일>이야말로 ‘VJ 특공대’!?]


사전 기획과 후 편집이 적다. 즉, 현장 촬영 때 맨몸으로 던져진 제작진들이 보물을 캐내야 하는 상황이다. 촬영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몫이 중요해진다. 현장에 떨어지는 제작진은 피디 2명, VJ 5명, 그리고 그들이 가진 장비는 HDV 카메라, 미속 카메라, 드론 등이다. ‘리얼’을 추구하는 프로그램이라면 특히 VJ의 역할이 커진다. <인간극장>같은 경우에는 작가나 VJ보다도 PD의 역할이 크다. 촬영 현장에서는 물론 그 외에도 철저한 사전 기획, 그리고 사후 편집 방향 조정에 관여하며 촬영에서 채우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총괄하니 말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3일>에서는 무엇보다도 촬영 현장에서의 순발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PD 만큼이나 VJ의 역할도 크다. VJ는 돌발적으로 만난 사람들과 친밀감을 형성하여 즉각적으로 인터뷰 승낙을 받아야 한다. 출연자의 이야기를 듣고 감이 좋으면 그대로 그와 동행하며 촬영을 이어갈지도 결정해야 한다. 또한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것에 초점 맞추어 카메라에 담아야 하는지는 확실히 VJ에게 선택권이 큰 영역이다. 이런 판단은 전혀 계획되지 않은 일들이기 때문에 둘 모두의 순발력이 중요하다.      


6mm 카메라의 도입과 장착에 따라 VJ라는 직업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장르가 바로 휴먼 다큐멘터리다. 생활 밀착형 취재에 있어서 조그만 카메라는 출연자들이 느낄 부담을 줄여준다. VJ들은 출연자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기 위해 친밀하고 진실성 있는 자세로 촬영에 임해야 한다. <다큐멘터리 3일>을 보면 단순히 카메라를 잘 다루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출연자와 몇 시간 동행하고 나면 출연자가 친구같이 말동무해줘서 즐거웠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마 그 순간은 제작진이, 특히 VJ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더 알아보기 : 일본판 다큐멘터리 3일, NHK의 <72시간>]                   

2007년 5월에 방영을 시작한 <다큐멘터리 3일>은 일본 NHK에서 방영되던 <72시간>의 포맷을 차용한 것이다. <72시간>은 2006년 10월부터 방송 중이다.


This is an unusual program series that explores human dramas through chance encounters with ordinary people at selected locations.
-공식사이트의 소개-


특정한 장소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휴먼 다큐멘터리로 기본적인 포맷은 같다. 72시간 동안, 즉 3일 동안 촬영한다는 콘셉트도 같다. 단지 한국의 <다큐멘터리 3일>은 약 60분으로 압축해 방송하는 반면 일본의 <72시간>은 25분 내외로 훨씬 짧다. 


한국의 <다큐멘터리 3일>팀과 일본의 <72시간> 팀은 2016년 함께 2부를 공동 기획, 제작하기도 했다. 하나는 중국의 최대 규모 중식당 시후러우에서, 그리고 하나는 미국 뉴욕의 한 동전 빨래방에서다. 중국과 미국은 세계 경제 강국 1, 2위를 다투는 대국이다. 뭐든지 큰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에서도 가장 큰 중식당, 그곳에서 일하는 웨이터부터 셰프들, 그리고 그곳을 찾는 손님들까지 찍으면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 미국에서도 가장 경제가 발달한 도시 뉴욕은 다양한 계층, 국적, 인종이 모이는 곳이다. 집에서 세탁기를 사용하지 않아 누구든 빨래방에 모이게 마련인데, 바로 그 빨래방에서 3일을 취재한다. 세계인들의 삶의 애환에 공감하며,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다. 


특집으로 기획된 두 편 외에는 보통 국내에서 촬영한다. <다큐멘터리 3일>은 한국에서, <72시간>은 일본에서 말이다. 휴먼 다큐멘터리를 관통하는 법칙은 보편적이고 따뜻한 정서이다. 외국 촬영보다는 한국의 익숙한 곳, 그리고 익숙한 이웃들을 대상으로 했을 때 그 효과는 배가 된다. 한국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다큐멘터리 3일>을, 일본을 잘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NHK의 <72시간>을 추천한다. 





**참고자료

-김현주, <생활밀착형 휴먼 다큐멘터리의 제작 행태에 관한 연구-KBS2TV ‘다큐멘터리 3일’을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교, 2011

-

매거진의 이전글 [방송도감#8] KBS <소비자고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