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아빠가 떠나고 남은 가족들

우리는 아직도 아빠 꿈을 꾼다

by 염소
2021년 5월, 우리 가족은 아빠를 떠나 보냈다. 그리고 남은 가족들의 삶은 이어졌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아빠는 꿈에 꽤 자주 나온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아빠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자주 한다. 아빠가 뭘 좋아했는지 기억하기도 하고, 아빠에게서 마음에 안들었던 점을 뒷담하기도(?) 한다. 그렇게 이야기 하다 눈물이 나면 그냥 흐르는대로 두고, 또 자연스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울고, 웃고, 남은 가족들은 아빠를 기억도 하고 보내주는 과정에 있었다.



2021년 7월 13일


010-xxxx-xxxx. 아빠 번호를 다른 사람이 쓰기 시작했다.


카카오톡에 갑자기 새로운 친구 한명이 생겼는데, 이름이 ‘울아빠’였다. 내가 저장한 아빠의 휴대폰 번호다.


프로필 사진은 다른 사람이었다. 이전의 아빠 프로필을 찾아보니, 아빠는 울아빠가 아닌 ‘이름없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마저도 '대화할 수 없는' 상대로 떴다. 정말 다행히 대화는 그대로 남아있다. 프사도 그대로다. 아침부터 일도 못하고 울었다.


아빠 번호를 누군가 쓴다는 게, 비유가 좀 그렇지만, 마치 아빠의 신체 일부를 누가 이어받아 쓰는 듯한 느낌이다.


아빠 신체의 일부와도 같은, 너무 많은 추억과 기억이 담긴 번호인데, 그걸 기증받은 사람은 아무 과거도, 사연도 모른채 해맑게 그 번호를 쓰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여전히 내 폰에 저장된 울아빠 번호로는 통화 목록과 녹음, 메시지가 남아있다. 당장 통화버튼을 누르면 아빠 목소리가 나올 것만 같은데 이제는 다른 사람의 것이 됐다.



2021년 8월 1일


엄마랑 주말에 외출을 나가다 아빠 얘기가 나왔다. 아빠 꿈 요즘엔 안꾸냐고.


나는 마침 간밤에 아빠 꿈을 꿨다. 놀러가는 꿈이었다. 저번에도 우리 가족, 친척들이 다같이 으리으리한 동굴 워터파크 리조트로 놀러가는 꿈꿔서 좋았는데 이번에도 아빠가 나왔다. 여름 휴가철이다 보니 휴가 보내기에 늘 진심이었던 아빠가 더 생각나나보다. 어젯밤 아빠 생각을 많이 하다 잤는데 딱 꿈을 꿨다. 아빠가 운전하고 엄마가 조수석에 앉고 그렇게 다같이 놀러갔는데 지금은 잘 생각이 안난다.


엄마도 이번주에 아빠 꿈을 꿨는데, 잊을 수 없이 나무나 생생했다고 한다.


아빠는 평소 자주 입던 새빨간 카라 티셔츠를 입고는 폐가 아프다고 했단다. 엄마는 어디가 아프냐고 걱정스레 물어봤다. 아빠는 "아무래도 이제 안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는 좋겠다, 애들이 이렇게 잘 커서 덕보고 살겠다. 그래도 힘들면 말해라. 내가 다 커버쳐줄게”라고도 했다고.


아빠는 마지막에 너무 아프게 가셔서 우리에게 마지막 말도 못하고 갔다. 목에 구멍을 뚫어서 유언이랄 것도 없고 인사도 없었다. 그 인사를 엄마 꿈에 나타나 ‘나 간다, 잘 지내고 고생해라’ 하고 간 거 같다. 그러고 내 꿈에도 나와서 같이 놀러도 가준 거 아닐까.


말은 없이 갔지만, 그래도 임종 며칠 전 내가 중환자실에 혼자 들어갔을 때 아빠가 애써 의식을 부여잡고 내 손을 아주 꽉 쥐던 생각이 난다. 너무 강렬한 기억이다. 아빠가 이렇게 힘이 셌나, 아파서 눈도 못뜨면서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걸까, 싶을 정도로 센 힘으로 내 손을 잡았다. 그때 펑펑 울면서 손 잡아줘서 너무 고맙다고 했는데, 정말 그게 마지막 교감이 될 줄이야.


아빠, 정말 고생했고, 어디에 있든 아프지 말고. 너무 보고싶다. 종종 이렇게 꿈에 나와줘..



2021년 12월 13일


너무 오랜만에 아빠 꿈을 이틀 연속 꿨다. 두번째 꿈은 꽤 길었다.


아빠랑 엄마랑 같이 여의도 출근길이었다. 근데 꿈에서조차 그 시간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 내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 엄마 아빠는 다 내게 굉장히 의지하고 있었다. 그전엔 내가 엄마 아빠를 따라다닌 느낌이었다면, 이젠 내가 어엿한 가장이자 어른으로서 부모님을 챙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치 아빠가 나에게 엄마를 잘 챙겨주라고 메시지를 남긴 것 같은 꿈 같기도 하고.


꿈에서 아빠는 나에게 이것저것 사달라고도 했다. 세가지였는데, 폰케이스랑 폰 받침대랑, 하나는 기억이 안난다. 나는 다 해드렸다.


할아버지도 나왔다. 할아버지랑 시장통에서 식사를 하려 했다. 누가 먹고 간 자리를 아직 치우지 않은 듯 아직 더러운 밥상이었는데, 결국 거기서 식사를 하기 전에 장면이 바뀌었다. 아빠를 만나서.


꿈에서 계속 시간이 없다고 느꼈다. 아빠랑 더 말하려고 했고 더 애틋했다.


마침 나는 오늘 이른 출근을 포기하고 1시간 추가로 잠을 자던 터였는데, 여의도로 출근하고 있어야 할 그 시간에 꾼 꿈이었다. 아빠가 꿈에 같이 와서 나랑 출근해준 것만 같았다.


아빠 꿈에 나와줘서 너무 고마워. 잊고 싶지 않아서 부랴부랴 적어 놓아.



2021년 12월 31일


마치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마치 어제까지 나쁜 꿈을 꾼듯 말야.
길고 슬픈 꿈에서 눈을 떠. 햇살 예쁜 아침을 맞을듯.


자우림 노래를 들으며 시작하는 2022년이다. 새해 노래로 최고의 선곡인 거 같다.


설레고 기쁘고, 어쩐지 최근 몇년 맞이했던 새해의 기분과는 다르다. 동시에 더 아빠의 빈자리가 더 허전하게 느껴진다.


11월쯤부터 나를 둘러싼 상황이 급속도로 좋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이제야 길고 긴 터널에서 나오듯. 엄마는 건강해지고 주변에 좋은 분들과 즐겁게 하루를 보낸다.


나도 일하는 게 훨씬 수월해졌다. 활력도 생겨나고 무기력함도 점점 사라지고, 무엇보다 새로운 사람이나 새로운 상황들을 즐기게 됐다.


정말 ‘삼재’가 끝나서일까? 뱀띠와 닭띠의 삼재는 2019년~2021년까지였다. 엄마와 아빠는 뱀띠, 나는 닭띠.


우연찮게도 2019~2021년은 여러모로 쉽지 않았다. 취업 문턱에서의 계속 마시는 고배, 취업은 했지만 직장 생활은 매우 녹록지 않아 하루하루가 암울하기까지 했다. 2019년 말 아빠는 위험한 수술을 받았고 2020년을 어찌 잘 버텨내셨지만 결국 2021년을 넘기지 못했다.


최근 상황은 거짓말처럼 괜찮아졌다. "매일 이렇게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들던 지난 3년과 달리, 올해 연말쯤부턴 "내년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재밌겠다!"라는 기대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속상하다. 아빠에게도 올해 하반기가 좋은 시기일 수 있지 않았을까. 올해 하반기까지만 잘 버텼더라면 기적적으로 회복해 좀 더 오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좀만 더 버티지. 그랬다면 나와 함께 이 기대감을 나누며 새해를 맞이할 수 지 않았을까.


2021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 점심에 파인다이닝 식당을 예약해 엄마와 민수(동생 가명)와 함께 했다. 아빠가 기침 때문에 가기 힘들어 하는, 연기 폴폴 나는 고깃집이었다.


나는 이제 일년에 한번쯤 가족들에게 이런 식사를 대접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데, 아빠는 아쉽게도 딸한테 대접 못받아봤네. 아빠가 병원 들어가기 전 해준 생일 케이크와 장어초밥이 마지막이었다. 테이블과 예쁜 의자도 생일선물로 사뒀는데, 택배가 도착하기 전 아빠는 보지도 못하고 입원했다. 그 다음 아빠의 생일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최근 엄마와의 제주도 여행 때도 그렇고, 행복하고 기쁜 날이 올수록 아빠 생각이 더 나는 거 같다. 조금만 더 함께하지.


그럼에도 난 2022년 올해 더 즐겁고 행복하고 힘차게 살 거다. 아빠가 보고 있을 것만 같다. 더 잘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