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를 다루는 건에 대하여

내가 유일하게 다룰 수 있는 악기

by 소심한 광대

사람들은


누구나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는 세상이라고 한다. 그 말은 그만큼 사람들이 문화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워졌다는 소리이기도 하고 그만큼 교육의 발달을 의미하기도 한다.


피아노, 리코더, 기타, 바이올린, 드럼 등 기본 교육과정이나 학원, 문화센터 강의 같은 수단으로 여유와 의지가 있다면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다.


나는


나 또한 어릴 적에 기초 교육과정에서 리코더와 단소를 배운 기억이 있고,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웠던 적이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결국 나를 가르치지 못했다. 리코더와 단소는 '나머지'라는 명목으로 모든 학우들이 다 하교를 한 뒤에도 몇 시간 동안 교실에 감금되어 연습을 했었는데, 결국 선생님들은 끝내 나를 포기했다.

20여 년 전에도 하기 싫은 것은 절대로 하지 못하는 편이었던 것 같다. 또한 악기에 재능이 너무 없는 것도 맞는 것 같다.


피아노 학원에 다닐 때에는 그래도 칠 줄은 알았다. 하지만 선생님의 반복 숙달의 교육방식이 싫었던지 나는 잔머리를 굴려 숫자를 속이다가 선생님에게 혼났고, 그 뒤로 학원에 가지 않았다.


많은 시간이 흐른 언젠가는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었다. 하지만 악기를 하나도 다루지 못했던 내 자신과 바쁜 삶을 살고 있다는 핑계와 같은 자각으로 인해 시도도 하지 못했다.


악기가 될 수 있는 모든 것들


탁자, 의자, 볼펜 등 모든 사물들은 사실 악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악기를 다루지 못하는 내가 근거 없이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목격한 바가 있다.


교양수업을 들을 때, 실용음악을 전공하는 학우들이 있었다. 나는 그때의 수업 내용과 선생님의 교육 방침은 도전하고 시도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선생님은 드럼을 전공하는 학우에게 드럼을 쳐보라고 했다.


"드럼이 없는데요."


학우의 대답에 선생님은 드럼 스틱과 악보 보면대를 건네주었다.

아주 잠시 고민에 빠졌던 학우는 작은 나무 의자를 하나 더 챙긴 뒤, 연주를 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도전과 시도 외에도 모든 사물들은 악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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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악기 - 노트북


모든 사물이 악기가 될 수 있다는 가정하에 나도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노트북이다. 컴퓨터도 맞고, 키보드도 맞지만 노트북이다.


그 이유는 내가 주로 노트북을 쓰고, 노트북으로 글을 쓰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문장에 리듬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쓰는 동안에도 리듬감이 느껴진다. 손가락이 리듬감을 형성하는 게, 마치 무언가를 연주하는 느낌이 들게 되고, 완성된 문장에서는 그 리듬감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글을 쓸 때 악기로 무언가를 연주한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키보드의 소음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리듬감이 존재하는, 연주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이 연주는 연주하는 동안은 관객의 귀에는 소음으로 들릴 수 있고, 연주가 끝난 후 눈으로 들어야 리듬감을 느낄 수 있으며, 활자로 기록되는 음(音)이다.


누군가에게는 미친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나도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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