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는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의 구분이 서지 않는다.
이곳을 걷는 이들은 누구나 시간의 감각과 함께 아주 자주 길을 잃게 될 것이다.
여행작가 유성용의 <여행생활자>라는 여행기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리장과 훈자가 나오는 부분을 특히 좋아한다. 이 책을 읽으며 리장과 훈자로의 여행을 꿈꿨고, 결국 거기가 다음 여행의 명분이자 핵심 루트가 되었으니.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까 봐 리장으로 가는 내내 나는 평정을 찾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버스가 고성 입구에 다다르고 드디어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어디선가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과연 운남성(雲南省)의 날씨는 듣던 대로 환상적이었다. 9월 말에서 10월 초의 리장(丽江)은 고원지대의 시원한 바람과 강렬한 태양이 만나 여행하기에 최고의 날씨를 선사해주고 있었다.
고성 입구에서 입장권(지금은 무료로 변경됨)을 끊고 들어서니 눈 앞에 거대한 미로가 펼쳐진다. 마치 몽롱한 꿈속으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느낌, 미로 속에 갇힌 듯하면서도 뭔가 길을 개척해가는 느낌으로 댄디하게 걸어본다. 마을 안쪽에는 리장과 샹그릴라 사이에 있는 옥룡설산(玉龙雪山)의 만년설이 녹아내려 형성된 수로가 흐르고 있었고, 해발 2400m의 고성에서 조금만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청명한 하늘이 손에 잡힐 듯했다.
고풍스러운 옛 건물과 아기자기한 벽화에 멈추고 멈추기를 반복하다 보니 그냥 멈춰서는 지점이 포토존이다.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모른 채 또 다른 방향으로 들어가니 색색의 꽃과 아기자기한 아트샵, 공방들이 펼쳐진다.
과자 가게에서 시식을 하고 또 다른 소흘가(먹자골목)를 지나 중심광장인 사방가(四方街)에 다다르니 나시족 전통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시족(纳西族)은 운남성과 사천성 일대에 분포하는 소수민족으로 동파(东巴)라는 상형문자를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마을 곳곳에서 저렇게 벽화와도 같은 그들의 문자를 발견할 수 있다.
화요일과 토요일 아침 10:30에 열리는 전통 결혼식 공연에는 나시족 할머니들이 직접 참여해서 꽤 괜찮은 연기를 선보이는데, 복장과 이목구비가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다.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리장이라고 들었는데, 캐릭터도 참고를 했는지 거기 나온 누군가를 닮은 것 같은 나시족 할머니들의 모습에 혼자 빵 터져 한참을 웃었다.
다시 고풍스러운 문을 통과하여 계속 안으로 들어가는데 학교에서 책가방을 멘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리장 고성의 또 다른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여행자의 삶과 주민의 삶이 고성 안에 공존한다는 것.
그래서 관광객을 위한 거대한 푸드코트가 곳곳에 형성되어 있지만, 고성 끝으로 조금만 더 나가면 서민적인 가격의 시장을 경험할 수 있다.
고성의 남문 근처에 있는 충의시장(忠义市场)은 규모로 보나 뭘로 보나 지금껏 봐왔던 그 어느 시장보다 대륙의 사이즈였다. 창고 하나가 전부 채소, 하나는 생선, 하나는 생필품 이런 식이었는데, 특히 저 국수 창고에서 사 먹었던 8위안(1400원 정도) 짜리 운남성 쌀국수의 얼큰한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충의시장이 있는 남문에서 반대쪽으로 쭉 가면 북문 옆에 리장 고성의 명물 대수차(大水车)가 나온다. 마을 곳곳에 흐르고 있는 수로의 시작점이기도 한 이곳은 밤이 되면 또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는데,
밤의 대수차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이 앞에서 몽롱한 기분에 사로잡혀도 좋았고, 밤의 고성을 산책하며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길거리 공연도 좋았다.
따리 고성(大理古城)부터 계속 들려오는 운남성 여인들의 멜로디는 이제 중독돼서 지나가면서도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고,
리장고성에서는 어느 라이브 카페의 달달한 발라드에 꽂혀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이 노래의 제목이 못내 궁금했는데, 후에 다른 도시에서 만난 현지인이 가사 몇 줄만 듣고는 바로 구글에서 찾아주었다. (참고로 원곡은 樊凡의 '我想大聲告訴你'이다.)
그렇게 매일 저녁 7시쯤 나서서 밤의 고성을 산책했다. 가끔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그런 날엔 센티해서 더 좋았다. 고성과 홍등과 자연과 수로가 있는 여기는 그 자체로 완벽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리장에서 지내는 5일 동안 단 하루도 길을 잃지 않은 적이 없었다. 굴곡진 미로에서 한 번쯤은 정답 같은 길을 찾을 만도 한데, 늘 기고만장하게 들어갔다가 헤매고 결국 원점으로 돌아와 다시 지도를 확인하고 겨우 숙소로 돌아가곤 했다. 그렇게 길치도 아닌데, 왜 여기선 그토록 자주 길을 잃었던 것일까?
북문의 대수차 옆으로 난 계단길을 따라 올라가면 청 시대에 건립된 도교와 유교, 불교가 융합된 일종의 종교 사원인 문창궁(文昌宫)이 나온다. 리장 고성에서 몇 안 되는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면서 유일하게 입장료가 없는 곳이기도 해서 매일 나이차(밀크티)를 사들고 와서 티타임을 가졌다. 그렇게 매일같이 전망을 내려다보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이렇게 빽빽하게도 얽히고설켜 있는데 외지인이 단 며칠 만에 길을 익힌다는 게 무리가 아닐까. 어찌 보면 여기서 길을 잃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숙소를 못 찾은 것도 아니고, 다음 목적지를 잊어버린 것도 아닌데.
그러니 오늘 하루쯤은 이 고성 안에서 얼마든지 길을 잃어도 좋지 않겠는가. 길을 잃었다고 해서 목적지를 잃은 것은 아닐 테니. 내가 가고자 하는 바를 잊지 않고 있다면, 중간에 아무리 길을 잃어도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가끔 길을 잃는데도 너무 걱정하지 말자.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닌데 하늘이 그 정도 실수는 용서해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