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가는 첫 번째 이유가 바로 타지마할(Taj Mahal)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며 '찬란한 무덤'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에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의 로맨스가 얽혀 있다.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였던 악바르 대제의 로맨스가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Agra)에서 핑크빛의 도시 자이푸르(Jaipur)까지 이어진다. 인도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대국이었던 무굴제국의 황제들에게도 말랑말랑한 로맨스가 있었다니 그 사연이 참으로 궁금하다.
인도 역사상 최강국이었던 무굴제국은 칭기즈칸의 후손인 티무르 제국에서 기원한다. 무굴(Mughal)이란 이름도 페르시아어로 '몽골'이란 뜻이다. 티무르의 5대손 바부르가 아그라를 수도로 삼고 무굴제국을 세웠는데, 그의 아들 후마윤 때 아프간의 침략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그다음 황제인 악바르는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전쟁터에서 자라왔다. 그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 <조다 악바르>의 이야기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영화 '조다 악바르'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에서 그는 광개토대왕의 용맹함과 더불어 세종대왕의 어진 품성까지 고루 갖춘 완벽한 왕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실제로 그는 어려서부터 전쟁에서 다져진 용맹함과 카리스마로 영토를 확장하고 왕권 강화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힌두교 부족을 흡수하기 위해 결혼 동맹을 맺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라지푸트족의 공주 '조다'이다. 이슬람 제국의 황제가 다른 종교의 황후를 받아들임으로써 종교적으로도 관용 정책을 펼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힌두교도에게만 부과되던 인두세(人頭稅)를 폐지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인두세를 처음 만든 왕조 또한 이슬람 왕조였다. 인도 최초로 이슬람 왕조를 세운 노예 왕조는 힌두교도를 이슬람교도로 흡수하기 위해 힌두 사원을 무너뜨리고 인두세를 매겼는데, 그렇게 시작된 불평등한 세금 제도가 다양한 종교를 포용하는 새로운 이슬람 황제에 의해 폐지가 된 것이다.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아그라에는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거대한 아그라 성이 있는데, 재료의 색깔 때문에 레드포트(Red fort)라고도 불린다. 디지털 카메라 이전의 필름 카메라 시절에 찍은 거라 사진의 구도나 화질이 좀 많이 구린 게 못내 아쉬웠는데, 그 목마름을 해소해주기라도 하듯 영화 <조다 악바르>가 개봉하는 바람에 아그라 성을 실제로 투어 하는 것보다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나라의 정사를 의논하는 자리에 저렇게나 많은 대소 신료들이 참석한 것도 특이한 장면 중 하나였는데, 악바르 대제는 신하들의 말을 황권으로 밀어내지 않고 경청해주었다. 또한 직접 갔을 때는 있는지도 몰랐던 여인들의 공간 하렘(Harem)이 영화 속에 그대로 노출돼서 신기하기도 했다. 역시 간접 경험의 최고봉으로는 영화만 한 게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악바르 대제의 황후 조다의 친정인 라지푸트 왕국은 어디일까? 인도의 서쪽 라자스탄 주에 있는 3색 도시 중 하나인 자이푸르가 바로 예전에 라지푸트 땅이었다. 악바르 대제의 로맨스 때문에 저 핑크색이 더 로맨틱하게 느껴졌는데, 사실은 1876년 영국 왕가의 방문을 환영하는 의미로 도시 전체를 분홍색으로 칠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알고 보면 'Pink City'란 별명도 상당히 슬픈 역사에서 비롯된 셈이다.
자이푸르에서 릭샤로 30분을 달려간 거리에 조다 황후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암베르 성이 있다. 역시나 필름 카메라의 한계로 제대로 된 전체 샷을 건지지 못했는데, 영화를 통해 그때의 목마름을 채울 수 있었다. 여기서는 이슬람 양식의 아그라 건축물과는 달리 힌두 양식만의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 기차로 4시간이 채 안 걸리는 곳에 각각 다른 스타일의 두 도시가 하나의 로맨스로 연결된다는 점이 참으로 흥미롭다.
덧붙이자면, 악바르 대제를 연기한 리틱 로샨(Hrithik Roshan, 1974)은 인도의 3대 칸(샤룩 칸, 살만 칸, 아미르 칸) 이후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로 거의 유럽인에 가까운 외모인데, 저 외모가 전형적인 북인도의 아리아 인종이다. 반대로 조다 역의 아이슈와리아 라이(Aishwarya Rai, 1973)는 남인도 출신의 드라비다계 인종이지만, 거의 여신급에 가까운 미모로 1994년 미스 월드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영화의 설정에 맞게 배우도 그 비슷한 인종으로 고른 듯하다.
다시 아그라의 타지마할로 돌아와서...
이 궁전과도 같은 무덤의 주인이며 황제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뭄타즈 마할은 남편 샤 자한의 아버지 자항기르의 20번째 아내의 오빠의 딸이며, 촌수로 따지자면 남편과는 사촌뻘이다. 그런 그들이 근친결혼을 할 수 있었던 건 당시 정치적 안정을 위해 종족별로 황후를 맞아들이는 관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그 수많은 황후 중에서도 샤 자한은 뭄타즈 마할에게 일편단심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총애를 했으면 결혼 생활 19년 동안 자식을 14명이나 낳았을까. 이 정도면 뭄타즈 마할은 거의 매년 배불러 있었다는 얘기인데, 그런 과도한 출산 때문에 요절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 아이를 낳다가 죽은 아내를 위해 대리석을 비롯하여 세상에서 값비싼 자재란 자재는 모두 들여와서 지은 것이 바로 타지마할이다. 이렇게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건축물이 산 자가 아닌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이라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그 섬세함과 정교함 때문에 완공까지 무려 22년이나 걸렸고, 그 결과 완벽한 좌우대칭의 미를 자랑하는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이 탄생한 것이다.
이 외에도 샤 자한은 아그라 성을 확장하고 델리 성을 건설하였으며, 델리의 자마 마스지드와 파키스탄 라호르의 샬라마르 정원, 아버지 자항기르의 영묘 등 수많은 건축물을 지어 일명 '건축왕'이란 별명까지 얻게 된다. 그리고 이 건축물들은 후대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영광을 안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력이 동원되고 국고가 낭비되면서 백성의 원성을 사게 되고, 결국 셋째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폐위당하고 마는데...
지도자란 무릇 만백성을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타 종교인 황후에 대한 사랑을 적절한 융화정책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성군이란 평을 들은 악바르 대제와 지나친 개인적 취향의 편식으로 화려한 건축물을 축조한 이면에 국력과 국고의 탕진이라는 오명을 써야 했던 샤 자한. 할아버지의 총애를 받은 만큼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도 할아버지로부터 배웠다면 좋았을 텐데. 무굴제국의 황실이 탄탄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황권 강화에 주력했던 군주와 정치에 참여했던 관료들과 밑에서 묵묵하게 일해준 백성들의 삼위일체로 이뤄진 것이 아니겠나. 우리 모두의 나라인데, 지도자라는 타이틀을 가졌다고 해서 사적인 취향을 드러내서야 되겠는가. 그러니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잘하시길 바란다. 지도자가 흔들리는 순간 백성도 같이 흔들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