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델리

by traveLife

두 번의 시작과 마무리를 여기서 했고, 세 번째 방문 때는 아예 스쳐가지도 않았던 인도의 수도 뉴델리. 그래도 그 나라를 알기 위한 입문 과정으로 가장 좋은 방법이 수도를 훑는 건데, 인도는 그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인도는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같은 수법으로 여행자들을 희롱한다. 더 웃긴 건 당하는 사람도 자신이 속고 있는 걸 안다는 거다. 그러면서 매뉴얼대로 당하고 있음에 은근 안심이 되었다는 후문...


보통은 공항에서 시내로 나가게는 해주고 그다음에 사기를 쳐도 치는데, 인도는 공항에서 나가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지금은 저가 항공사의 발달로 인도로 취항하는 행선지가 다양해졌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델리와 뭄바이행 2곳뿐이었다. 뭄바이는 인도의 중간쯤에 있으니 북쪽에 있는 델리부터 시작하는 게 루트상 효율적이어서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델리부터 인도의 여정을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비행 스케줄이 밤에 떨어진다는 것. 그래서 각종 여행 커뮤니티에서는 공항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에 나가라는 충고가 '인도 십계명' 중 하나로 회자되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날이 밝은 후에 시내로 들어간다 해도 여행자 거리까지 무사히 입성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11년도부터 델리에 공항철도가 생기면서 그나마 택시 사기가 줄어들긴 했지만, 문제는 여행자 거리가 있는 빠하르간지(Paharganj)의 지하철 역 위치가 애매하다는 것. 공항철도의 종점인 뉴델리역은 기차역 건물 뒷쪽에 위치해 있어서 여행자 거리로 가기 위해서는 기나긴 육교를 지나야 하는데, 그 육교의 입구에서부터 악어들이 입을 벌리고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여행자 거리에 폭동이 일어나서 못 들어간다는 둥, 기차표를 싸게 구할 수 있는 정부 인증 여행사로 데려다주겠다는 둥, 여기를 지나려면 통행세를 내라는 둥 수십 년 전부터 써오던 사기 수법을 마치 구전동화 들려주듯 읊조리며 겁을 준다.

그렇게 악어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틈을 뚫고 기차역을 빠져나오면 이 혼잡한 거리가 웰컴 인사를 건넨다. 이제 다 왔다. 이 길을 건너면 드디어 여행자 거리 빠하르간지로 입성하는 것이다.

지금의 이 모습도 점포를 정리하고 거리를 넓혀서 나름대로 정비된 모습이다. 굳이 여기에 숙소를 잡지 않아도 되고 환전도 시중 은행에서 하면 되는데, 올 때마다 여길 고집하는 이유는 그래도 여행자 편의시설이 많고 기차를 바로 앞에서 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자 거리'라는 말이 이상하게도 여행을 시작하는 초심자들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어감까지이다. 여기서 빠져나가는 순간 다시 이방인을 타깃으로 하는 각종 사기꾼들에게 시달리게 될 테니.


그래서 델리는 늘 비행기나 기차를 타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정도에 그치고 만다. 한 나라의 수도이며, 인도가 독립하기 전에는 영국 식민지의 수도였고, 또 그 이전에는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유서 깊은 이곳을 그냥 이렇게 지나치는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여행 첫날부터 혼을 빼앗기게 만드는 악어들로부터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으니까.

그리하여 나는 델리만 생각하면 미안해진다. 어쩌면 나는 그때 델리가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외면한 것은 아닐까? 살아갈 방향을 잃고 헤매는 저들을 너무 매몰차게 내친 것은 아닐까? 왜 저렇게 처절하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 한 번쯤 돌아봤어야 하지 않았나... 한없이 소극적이었던 나를 반성하며 델리를 떠난다. 언젠가는 이 혼돈의 도시를 쓸어안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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