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도 '취소 버튼'이 있다면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by 에센티아

지난주 '처음 학교로' 사이트를 통해 아들의 내년도 희망 유치원 입학 신청을 했었다.

랜덤으로 추천을 하여 선발하는 것이기에 오늘 결과 확인을 해보니, 글쎄 당첨이 된 것이다.


순간 기분이 얼떨떨하였다. 오잉? 기뻐야 하는 것 아니던가?

내가 선택해서 신청해 놓고 당첨이 되었는데, 딱히 기쁘지도 않은 이 무덤덤함은 무엇인지.


기쁨은 고사하고, 당첨된 유치원에 등록 확정하는 버튼을 누르기까지, 한참을 고심하고 머리 굴려보다 몇 시간 만에야 등록 버튼을 눌렀다.


아 이제 결정 났어. 끝이야.

아니, 근데 내일까지는 '등록취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쓰여있다.

우이 씨, 뭐야 이건.


차라리 무를 수도 없게 선택권이 없는 편이 더 나을 것 만 같았다. 그러면 더 이상은 고민도 뭣도 하지 않고, 주어진 숙명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 살아갈 텐데.





살면서 '선택한다는 것'과 '선택을 취소할 수도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살다 보면 잘못되거나 후회되는 선택을 되돌릴 수 있도록, 인생에도 '취소 버튼'이 좀 있었으면 싶을 때가 있다.제발 좀 부탁이니, 어리석었던 예전의 결정을 없었던 일로하고, 과거를 무르고 싶을 때 말이다. 선택을 내릴 당시에는 그로 인한 결과나 파급력이 도무지 어떤 것인지 가늠하지 못해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경우이다.


하지만 결혼이나, 출산을 비롯해 그에 버금가는 인생의 어떤 중대한 결정에는 결코 '취소'라는 버튼이 없다. 물론 중간에 그만두거나, 계약을 무효화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것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나, 이미 경험한 만큼의 물리적인 시간이 아예 사라지고, 그 시간이 다시 되돌려지는 것은 아니다.


예컨데, 이혼을 할 수는 있지만, 결혼을 해서 애 낳고 살기 이전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업을 중단했다가 만년에 학교로 돌아갈 수는 있지만, 학창 시절 그 자체를 고스란히 복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재판에서 승소를 해 보상금을 돌려받을 수는 있지만, 피해자는 살아 돌아오지 않으며, 재판 동안 허비했던 그 모든 고통스러운 감정과 시간 소모는 어떻게 해서도 보상받을 수 없다.


그런 일들에 대해서 우리는 인생에 제발 좀 '되돌리기 버튼'이 있기를 바란다.

처절한 후회와 좌절의 순간을 마주할때, 내 눈 앞에 부디 그런 버튼이 있기만 하다면.


하지만 여지껏 인류는 타임머신을 발명하지 못했고, 때문에 이미 일어난 일, 이미 결정하고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깨끗이 받아들이고 후회나 회한 없이 그다음을 향해 나아가는 편이 현명한 것이다.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존재할 리 없는 인생의 '되돌리기'나 '취소' 버튼을 염원하는 행위가 바로 '후회'이다. 이 후회는 사전 조치와 사후 조치를 통해 최대한으로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


사전 조치로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충분히 치열하게 고민을 하고 예측을 해보는 일이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선택을 내리기 전까지 깊이 분석하고 헤아려 보며, 내가 진정 원하는 방향이 맞는 지를 분명히 가늠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인생사의 아주 중대한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의외로 이 과정을 스킵하며 결정을 내리곤 한다. 옷 한 벌을 살 때는 여기저기 매장을 돌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고민하면서도, 결혼같은 중대사는 감성과 직관에 이끌려하는 경우가 그런 것이다. 이 사전 작업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저한 답을 얻는 것이다.


이 질문을 심사숙고하여 확신이 서는 답을 얻을 때까지 고민을 해 본 사람은, 훗날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를 피하거나 적어도 자신의 경솔함을 탓하는 자책이나 회한이 적다.


그렇다면 후회를 방지하는 사후 작업은 무엇일까? 바로 선택을 한 후의 단호한 결심이다. 고민 끝에 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면, 결과가 어찌 되었건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결의가 필요하다. 그 책임이란 바로 '받아들임'과 '감수함'이다.


'이 결정으로 인해 어떤 상황이 오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감수하겠어!'

라는 결심을 스스로에게 약속하고, 그런 자세로 앞을 향해 걸어 나갈 때, 좀처럼 후회할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어쩌면 정신 승리처럼 저절로 밀려드는 후회의 감정을 억눌러야 할 일도 생길지 모르지만,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진정한 한 영혼의 자유에 대한 대가이며, 숭고한 존재의 의미임을 안다면, 그는 도리어 실패나 고통을 한 차원 더 높은 승리나 깊은 배움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이다.


photo-1583341655393-094c9e302a2e.jpg?type=w1 © richwilliamsmith, 출처 Unsplash


가끔씩 나도 내가 원하는 게 무언지를 잘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땐 차라리 모든 것이 고정불변이기에 아무것도 선택할 필요가 없었던 중세시대 농노나 노예의 삶이, 고민과 갈등 없는 정신적으로는 속 편한 삶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선물로 주었다는 기독교의 사상을 생각해볼 때, 선택권을 부여받은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있어 최상의 축복이겠지만 말이다.


아이 유치원 선택이라는 문제는 긴 긴 인생에서 보면 아무런 문제도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벌써 2년 간 경험해보니, 내 일 년 동안의 일상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아이의 평일 반나절을 차지하는 문제이기도 하더라.


후회하는 것이 싫고, 생각이 많기도 많은 나는 스스로 지원해 놓고 당첨이 되었는데도 안심되고 기쁘기보다는 이 유치원에 등록을 하는 게 맞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윽고 등록 확정 버튼을 눌렀던 것이다. 어차피 지원을 했던 당시, 나는 장단점을 꼼꼼히 따져보며 결정을 내리지 않았었나. 수많은 대안 중에서 이 곳이 최선이라고 판단했기에 선택했던 것이었다. 그러니, 결정을 확정짓기로 하자! 이것으로 후회 방지 사전 작업은 해낸 것이다 라고 후련해하면서.


선택을 해버렸으니, 후회 방지 사후 작업으로 내 선택에 대한 결과를 감수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이게 웬걸.

내일까지 취소 가능 버튼이 활성화된 것이다.


아~ 이런. 이렇게 되면 내일까지 또 심사숙고를 할 여지가 생겨 버렸네~. 갈대 같은 연약한 내 결심을 또다시 시험에 들게 하는 이 놈의 '취소' 버튼 이여.




이미 결정한 것은 결정한 대로 가기로 하자. 어떤 것들은 취소 버튼이 차라리 없는 것이, 괜한 고민의 시간을 갖지 않게 해주기도 하는 것 같다.


내 인생에 되돌아가고 싶고, 무르고 싶을 만큼 수많은 실패와 좌충우돌 고난과 좌절이 있었지만, '취소'버튼이 있다 해도 결코 누르지 않을 거야! 이미 여기까지 살아 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모든 경험과 시간까지 다 포함해서가 지금의 나이고 내 인생이니까.


55e0d64b435baa14f6da8c7dda79337c143adbe1534c704f75297cd6954dc25b_1280.jpg?type=w1 © pasja1000,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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