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창선 Jan 28. 2018

삶의 품격을 배우다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제가 쓴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 (사우, 2017)의 내용을 브런치에 맞게 요약하여 연재합니다. 전체 글은 책을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책 소개를 둘러보세요.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87332145


우리는 누구나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나와 세상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세상이 나에게 맞춰주는 경우는 없다. 세상은 나로 하여금 자기 말을 순순히 따를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힘없는 나는 살아가면서 숱한 고민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세상이 시키는 대로 할 것인가, 아니면 나의 본디 모습을 지킬 것인가.


소크라테스는 이 어려운 문제 앞에서 실존적 결단을 내린 철학자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살 길을 마다하고 기꺼이 독배를 들었던 단독자다. 철학자로서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했던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는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잘 담겨 있다.


진정한 자존감이란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에 아니토스, 멜레토스, 리콘 등의 고발로 재판을 받게 된다. 이때 그의 나이 70세였다. 그의 죄목은 신을 부정하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것이다. 당시 소크라테스는 거리나 광장에서 아테네 젊은이들을 상대로 그들의 영혼을 일깨우는 이야기들을 하곤 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죄목이야 그랬지만 실제로는 당시 정치 지도자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던 소크라테스를 젊은이들이 따르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재판이었다. 그는 아테네 시민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고, 배심원들을 상대로 자기변론을 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에 대한 고발과 재판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는 고발장 내용을 하나하나씩 반박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결코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그는 배심원들에게 자신의 무죄를 간청하지 않겠다고 밝힌다. 자신은 죄가 없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활동을 계속할 것이며, 자기를 죽인다면 아테네에 큰 손실이 될 것이라고 당당하게 자기 변론을 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훈계했다.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행동을 할 때 옳은지 그른지, 착한 행동인지 나쁜 행동인지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살게 될 것인지 죽게 될 것인지를 저울질해야 한다는 것이 그대의 생각이라면, 그대의 제안은 바람직하지 못하오.”


자신의 행동에 따라 사느냐 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옳은 것이냐 잘못된 것이냐가 중요하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생각이었다. 그는 애당초 재판의 결과에 따라 죽고 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죽음이란 두렵기만 한 것일까


사실 소크라테스는 마음만 먹으면 목숨을 구할 길이 있었다. 우선 시민법정에서의 태도였다. 그는 자신에 대한 혐의를 부인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시민배심원들을 향해 훈계를 계속했다. 이쯤 되면 누가 재판을 받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구차스럽게 목숨을 구하지 않고 기꺼이 죽는 길을 택하겠다고.


“하지만 앞에서도 위험 때문에 자유인답지 않은 일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듯, 지금도 이런 식으로 항변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런 식으로 사느니보다 차라리 이런 식으로 항변하고 죽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만약 소크라테스가 시민법정에서 배심원들에게 맞서지 않고 굽히는 태도를 보였더라면 애당초 유죄판결이 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자신의 태도에 따라서는 무죄를 받거나, 유죄판결이 나더라도 사형을 면할 수 있었겠지만, 소크라테스는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선고를 받고 시민법정을 나서면서도 결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배심원들이 옳은지, 자신이 옳은지는 오직 신만이 알 것이라고 했다.


“아니, 벌써 떠날 시간이 되었군요. 나는 죽으러, 여러분은 살러 갈 시간이. 우리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일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신 말고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두 번째로 살 수 있었던 길은 탈옥이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는 감옥에서 독배를 받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 크리톤이 이른 아침에 찾아와 탈옥을 권한다. 크리톤은 친구로서 자책까지 해가며 소크라테스에게 탈옥을 서두를 것을 종용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탈옥을 거부하고 감옥 안에서 동료 및 제자들과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그 내용은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돈』에 담겨 있다.


소크라테스는 제자 심미아스에게 철학자가 죽음을 노여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철학에 올바르게 종사해온 사람들이 다름 아닌 죽음과 죽어 있음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네. 자, 만일 이것이 참이라면, 그들이 전 생애 동안 다름 아닌 이것을 열망하면서도 정작 오랫동안 열망하고 추구해온 것이 닥쳤을 때 그것에 노여워한다는 건 정말이지 이상한 일일 걸세.”


평소 철학자로서 영혼 불사론(不死論)을 말했던 자기가 어떻게 죽음을 두려워하겠느냐는 뜻이었다. 죽음을 영혼의 해방이라고,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말해왔던 철학자가 죽음이 눈앞에 와 있다고 해서 말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내면의 진실을 지킨 단독자 


이렇게 탈옥을 거부하고 독배를 든 소크라테스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부디 갚아주게. 잊지 말고.”


여기서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이 마지막 말은 자신을 삶이라는 병에서 낫게 해준 데 대해 감사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는 그렇게 감사해하며 세상을 떠났다. 플라톤은 『파이돈』의 마지막에서 스승 소크라테스를 “가장 훌륭하고, 가장 현명하며 가장 정의로웠던” 사람으로 기록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으로 자신의 자존을 지켰고, 그로 인해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는 철학자가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목숨으로 내면의 진실을 지킨 단독자(單獨者)였다.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모든 법을 상대화했으며, 그럼으로써 모든 사람의 내면에 있는 ‘무한한 것’을 일깨워주고 이 무한한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최고 권위가 되어야 함을 보여준 것이었다. 사람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내면에 있는 진실이 최고의 것이 되어야 함을 소크라테스는 보여주었다. 그에게는 아테네의 법이나 시민법정보다도 소중한 것이 철학자로서의 자존이었다. 자기가 사는 시대에서 국가, 그리고 대중과 불화를 겪으면서도 자기 영혼을 지키는 철학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대면하는 소크라테스적 상황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2400여 년 전에 살았던 철학자의 삶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도 살면서 소크라테스가 처했던 상황에 수없이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처럼 목숨을 거는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겠지만, 진실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현실 앞에 굴복할 것인가의 기로에 설 때가 많다. 그때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나의 모습이, 나의 삶이 결정된다. 


독배를 든 소크라테스의 삶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철학과 삶의 일치다. 아무리 거창하고 숭고한 사상과 철학을 말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삶에서 그것을 구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소크라테스는 죽음으로 말했다. 그래서 동료 크리톤이 탈옥을 권유했을 때,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철학자의 삶이 아니라고 답했던 것이다.


우리는 숱한 욕망의 유혹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권력, 재물, 명예, 위신……. 거창한 대의를 목소리 높여 말하던 사람들조차 그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아니 더 집착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허탈해지는 순간도 많다. 우리 모두가 소크라테스적 상황에 처해 있음을, 그리고 생각과 삶의 일치라는 힘겨운 숙제를 껴안고 살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인간으로서 나의 자존과 품격을 높이는 길은 결국 내 마음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


당신의 영혼을 흔들고 찌를 12권의 책

읽고 사유하는 사람만이 싸우고 사랑할 수 있다


저자 유창선은 내면의 힘을 키워준 책 12권을 소개한다. 단순히 인문학 고전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이 자신의 내면 풍경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오늘 이곳에서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밀도 있게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자신의 진실을 지키고 존엄을 잃지 않으려고 분투하는 한 지식인의 자기 탐구 기록이기도 하다. 책 읽는 사람이 시공간을 초월해 위대한 사상가와 온몸으로 만날 때 그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제가 쓴『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자세한 책 소개를 둘러보세요.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87332145

이전 05화 인간은 왜 영웅과 강자를 원하는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