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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데이트를 박물관으로 가요

작가 남자친구와 역사 답사 데이트

by 사적인 유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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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게도 나는 한국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학교 다닐 때부터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나는 항상 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오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는 말 그대로 역사에 미쳐있다고 볼 수 있다.


남자친구는 2-3살 때부터 미국에서 자랐고, 한국말보다 영어를 더 빨리 뗐으며 현재도 영어를 더 편해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어를 못하는 건 아니다. 심지어 어려운 단어를 섞어 사용할 때가 많으며, 오히려 내가 ‘이런 말도 써..?’라고 놀라기도 한다.


남자친구는 중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한국어를 잘 못 했지만, 언제부턴가 한국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책을 구해서 봤다고 한다.


그렇게 남자친구는 현재 영어로 한국사를 집필하고 있는 작가로 등재되었고, 아마존에 이순신 장군 / 광개토대왕 / 김유신 장군 등의 책이 등록되어 있다.


남자친구는 해병장교, 국제 용병 출신으로 40개국이 넘는 나라들을 다녔고,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직업상 생사의 갈림길에도 여러번 서고는 했다.


남자친구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후회 대신 의미있는 무언가를 남기는 삶을 살고 싶어서 그때 딱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남자친구는 한국의 역사를 해외에 알리고 있고, 여전히 책을 집필 중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답사도 종종 다니는 편인데, 역사에 대해 관심이 1도 없었던 나에게는 남자친구의 모습이 신기하게 비춰지기도 한다.


역사적 배경을 1도 모르는 나에게는 그저 단순히 역사 박물관, 역사 유적지이지만 남자친구에게는 그 역사 속으로 들어가 눈으로 보이는 것 외의 인사이트를 보고 정리한다.


지금까지 남자친구와 여러 유적지, 박물관을 방문했는데, 100% 역사를 다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예전보다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유적지에서 우리의 모습은 조금 웃긴데, 남자친구는 책에 쓸 유적지의 모습을 담는다면 나는 내 모습을 담을 포토 스팟을 찾는다. 남자친구는 유적지를, 나는 유적지를 배경으로 한 내 모습(또는 우리)을 초점 잡아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누군가는 데이트로 역사 답사라고 하면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맨날 하는 카페, 영화, 밥 데이트가 아닌 의미있는 유적지 데이트도 좋다고 생각을 한다.


비록 역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유지되어 있는 유적지를 보게 된다면 묘한 기분이 들 것이다.


최근에는 남자친구와 충북 여행을 다녀왔는데, 내 취향 숙소와 카페 그리고 남자친구 취향 역사지를 각각 골라 일정을 짜고 여행을 다녀왔다.


다녀 온 역사지 중 백제성왕비가 있는데, 그 곳은 역사 속에서 피바다가 되었었던 곳이라면 현재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풍경이 남아 있다.


역사를 알고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여러 감정이 들면서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이 모습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지금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관심사와 취향이 다르지만, 서로의 것만 고집하지 않고 서로의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경험하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


시야가 좁았던 나에게 세상을 더 넓고 크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준 남자친구가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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