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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이가 되기 싫어요

착한 아이 vs. 나쁜 아이

by 사적인 유디


어릴 때부터 항상 '배려가 많다', '착하다'라는 칭찬을 들으며 살아왔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고,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했으며, 친구들과도 큰 마찰 없이 지냈다.


크게 말썽을 부리지 않고 조용히 있으면 '착하다'라는 칭찬을 받았고, 주위의 기대에 맞춰 살아왔다. 착한 학생, 착한 친구, 착한 딸이라는 칭찬을 받는 게 좋았다. 이 말을 들을 때면 인정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고, '착한 아이'의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인 20대 중반의 나는 '착하다'라는 말이 마냥 좋은 소리는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아빠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나는 아빠를 졸졸 따라다니며 술을 마시나 안 마시나 감시를 했다. 어디서 어떻게 몰래 마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장례식에서도 취한 낌새가 있었고, 크게 소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아빠가 사고를 치지 않도록 계속 따라다녔다.


담배 피우러 갈 때도 따라가고, 바람 쐬러 갈 때도 따라가는 내 모습을 본 고모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 술 못 마시게 하려고 그렇게 따라다니나 보네, 아이고 착해라."

"딸이 저렇게 감시하는데 술 못 마시지. 착하다, 착해."


고모한테는 나의 모습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착하다는 말이 이때부터 거슬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정말 착한 게 맞을까? 아니면 착한 척을 하고 있는 걸까?


적어도 큰아빠 장례식장에서는 착해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의 말썽이 없었으면 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아빠를 감시한 것뿐인데 말이다. 나는 이 상황이 아주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지만, 이 모습을 본 누군가는 착하다며 칭찬을 했다.


주위 친구들도 "OO가 그러던데, 니 진짜 착해 보인다더라."라며 칭찬을 전달해 주기도 하고, 실제로도 착한 친구로 자리가 잡혀 있었다. 나는 그저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을 했을 뿐이었는데, 착한 아이의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고, 상대가 바라는 행동을 하면 '착한 사람'이 되었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되었다.


'착하다'와 '나쁘다'의 기준은 언제나 내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것이었다.


나는 나대로 옳다고 생각해서 한 행동인데, 상대방이 원치 않으면 쉽게 나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럼 나는 착한 걸까, 나쁜 걸까?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그걸 판단할 수 있는 걸까?


어릴 때 나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건 결국 내가 정말 선해서가 아니라 인정받고 싶어서였다. 나는 남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내가 원하지 않는 일도 하면서 스스로 속이고 있었다. 결국 착한 아이가 된다는 건, 내가 원하는 걸 포기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주위의 기대에 맞춰 '착한 사람'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게 싫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막 방황과 반항을 하며 나쁜 사람이 되겠다는 건 아니다.


내가 내린 판단과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이 남의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 스스로가 나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건 아니기에, 남이 정한 기준에 맞춰 '착한 사람'코스프레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며 살려고 한다.

그게 진짜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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