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내가 원하는 게 뭐지?>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런 질문이 떠오를 때 해야 할 것은
레퍼런스를 찾는 게 아니다.
답답한 마음에 친구와 수다를 떨며 조언도 듣고 털어내고 싶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나는 토마토인데 친구는 바나나일 수 있다.
토마토에게 바나나의 조언은 도움이 안 된다.
서른 번째 토마토는 결국 다른 레시피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1년 차에는 멋있어 보이고 싶은 욕망에
카프레제가 되어보았고,
2년 차에는 왠지 해외파의 느낌이
나와 어울리지 않아 토마토 잼이 되어보기도 했다.
딸기잼의 달콤함을 이길 수 없는 토마토 잼은
3년 차에 햄버거 속 재료가 되어보기로 했다.
누구나 좋아하는 햄버거 속 일원이 되었지만,
왠지 만족스럽지 않은 기분을 떨칠 수 없어
4년 차에는 영혼의 토마토 닭고기 수프가 되어보기로 한다.
이것저것 다른 토마토 레시피를 만들어보며 살다 보니 금방 4년이 지났다.
20대에는 매년 바뀐 나이를 잘 기억했는데,
30대가 되니 헷갈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뭔가 뚜렷하게 바뀌는 성장은 별로 없고,
잘 해결되지 않는 해에는 한 번 더 시도해보게 된다.
어떤 해에는 32살을 두 번 살기도 하고,
세 번 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뭐야, 나 언제 서른넷이 됐지?’ 하면서
시간의 속도를 잊어버리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러다 ‘네가 토마토가 아니면 어쩌려고?
토마토인 줄 알았는데 양파일 수도 있고,
호박일 수도 있는데
뭘 믿고 네가 토마토인 걸로 확신하지?’
라고 스스로 묻는 때가 오는데,
그건 지금 뭔가 잘 안되고 있다는 거다.
될 때까지 밀어붙이면 된다는 자기 계발서의 이야기가 나에게도 해당되는 건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다양하게 골고루 먹어야 좋다는
건강하고 재미없는 조언은 씨알도 안 먹힌다.
난 토마토가 좋은데,
뭘 다른 맛을 보라는 건지, 귀찮게.
언젠가 처음으로 사주를 보러 갔을 때였다.
사주는 통계학이자 사이언스(라고 친구가 말해줬다), 과연 인간의 엄청난 의지와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내 사주는 어떻게 풀리는지 궁금했다.
직업운이 어떻게 되는지 올해는 사주가 괜찮은지, 내년은 어떤지 많은 이야기를 해줬는데 기억나는 건 뜬금없이 나온 하나의 질문이었다.
“한 가지 음식만 먹지?”
“네? 사주에 그런 것도 나와요?ㅋㅋㅋ”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어서 너무 황당하고 웃겼다.
한 가지에 꽂히면 옆에 다른 것들을 보지 않는 기질이 사주에 나와있었는지도 모른다.
역시 사주는 통계학이다.
더 나은 선택이 있다는 것을
고민하고 싶지 않은 귀차니즘은
하나에만 빠져 오류를 범하게 된다.
작년에는 건강은 챙기고 싶은데 요리를 잘하지 못해서 토마토와 양배추만 열심히 챙겨 먹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매일 아침 하나씩 고구마만 먹었더니 밤고구마, 호박고구마, 꿀고구마 ... 종류별로만 무려 4박스를 먹었고, 요즘엔 수제 그릭요거트에 꽂혔다. (만들어놓고 버리는 게 더 많지만)
4번째 도전한 영혼의 토마토 닭고기 수프도
왠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실패한 기분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얼마나 많은 실패를 거듭해야 찾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시간이 지나가고
멀리 서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알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서른네 번째 토마토는
자신의 선택이 실패할 때마다
방향을 찾았는지 모른다.
실패한 레시피가 쌓일수록
나에게 잘 맞는 레시피로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배운 것 : 나의 확신은 언제나 아닐 수 있다.
실패할 때마다 내가 나를 응원하기 위해서, 나는 그게 기본값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었어,
그럼 이건가? 다시 한번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