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여행] 로워데난 → 인버라난, 2015년 8월 25일
어제가 가장 힘든 코스일 줄 알았더니 오늘이 더 힘들었다. 한쪽 발은 진흙탕에 빠져서 젖고, 목 말라죽겠는데 물은 오전에 다 떨어지고, 오늘의 도착지인 인버라난(Inverarnan)은 아무리 걸어도 보이지 않고...
오후 내내 쨍쨍한 햇볕 아래, 100일 치 여행을 위한 온갖 물건을 쑤셔 넣어 놓은 배낭을 짊어진 탓에 땀에 흠뻑 젖으면서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인버스네이드를 거쳐 한참을 걸어 인버라난에 도착했다. 일단 제일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타들어가는 목에 기네스 흑맥주부터 들이부었다. 맥주가 이렇게 달달했었나 감탄하면서 300cc를 단숨에 들이켠 후, 아쉬운 마음에 500cc 한잔을 더 시켜 또 숨도 쉬지 않고 들이켰다.
앞으로 그렇게 맛있는 술은 다시 마시지 못할 것 같다. 갈증으로 마음이 급했던 탓에 사진 한 장 남겨놓지 않은 게 아쉽다. 사진 뽑아서 액자로 걸어놓고 싶을 만큼, 진짜 인생 맥주였는데.
운은 어제까지였나 보다. 주변에 있던 숙소가 다 예약 종료였다. 남은 자리라고는 어떤 숙소 건물 옆에 있는 캠핑 사이트밖에 없던 터라, 다른 방법이 없어 텐트도 없으면서 캠핑 사이트를 선택했다. 우비를 방수포 대신 깔고 그 위에 침낭을 펼쳐놓으니 어떻게든 잘 수는 있을 것 같은 자리가 만들어졌지만, 밤새 얼어 죽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게 내 마지막 일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쓰고 나서 보니 쓸 데 없이 비장해서 헛웃음이 나온다. 설마 죽기야 하겠냐만, 바람 막아줄 벽도 없이 풀밭에 자리 하나 깔고 드러누우니 침낭 안이라도 되게 춥다. 그저 오늘 밤의 노숙이 재미있는 추억거리 중 하나가 되기를. 일단 풀밭에 자리를 펼쳐놓고 캠핑 사이트를 빌려준 숙소 식당에 와서 일기를 쓰고 있다.
오늘 즐거웠나 생각해보면, 솔직히 아닌 것 같다. 너무 힘들고 지치는 하루였다. 기진맥진한 채 걸어오는 동안 친한 친구들과의 에피소드가 뜬금없이 하나 둘 떠올랐다. 그냥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순간들이었다. 그러더니, 야근과 철야에 시달리던 탓에 꽤 오래 구석에 처박아두고 타지 못했던 자전거가 한동안 계속 생각났다. 언제부터 타지 않았더라? 그렇게 좋아했는데. 그렇게 아꼈는데.
왜 하필 자전거였을까? 왜 하필 별 대단하지도 않았던 순간이었을까? 더 값지고 중요했던 것도, 그런 순간도 살면서 많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