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신청서
나는 어느새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그렇게 남녀공학을 가고 싶어 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나는 남고에서 즐거운 학교생활을 했다. 이번에는 나를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들어 주었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고등학교 생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수학여행과 얽혀있었다.
먼저 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 그간 우리 집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약 3년 전,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 2학년 즈음에 아버지께서는 고속버스 정비사로 일하시던 직장을 퇴직을 건강원을 개업하셨다. 혹시라도 건강원을 모르는 분들이 계실까 봐 설명드리자면 배, 도라지, 붕어, 흑염소 등을 달여서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하는 곳이다. 우리 집은 부족함 없이 하고픈 것을 모두 하며 살 수 있는 집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네 식구가 잘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빠의 헌신 덕분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사람들은 불필요한 지출을 막는다. 예를 들자면 넷프릭스 구독을 끊고 배달 음식을 줄이는 것처럼 말이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보약을 먹고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은 잘 보지 못했다. 건강기능식품은 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맬 때 우선적으로 지출을 줄이는 품목이었으니 건강원 수입도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학교는 주어진 선택지(서울, 제주도, 중국, 일본) 속에서 수학여행을 골라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각 수학여행 코스마다 회비 또한 차이가 있었다. 훗날 매스컴에 선택적 수학여행으로 차별을 조성하는 학교로 소개되자 사라졌지만 그 시절 우리는 나뉘어서 갔다.
각 코스별로 티켓팅과 숙소예약을 위해 인원파악이 필요했기에 안내문은 학기 초에 나왔다. 이미 코스가 4개로 나뉜 것에서 같은 반 학우들과 함께 추억을 쌓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간 점심시간이면 함께 어울려 다니는 무리마다 어디를 갈지 의견조율이 한창이었다.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 처음부터 나뉘었는데 쇼핑이 목적인 아이들은 대부분 서울을 택했다. 그리고 여행이 목적인 아이들은 대개 일본, 중국, 제주도 중에서 선택을 했다. 수학여행 회비는 일본은 약 80만 원, 중국은 약 60만 원, 제주도는 약 30만 원이었다. 신청서를 어머니께 드리면서 직접 일본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리지 못하고 일본이 참 재밌고 볼 것도 많을 것 같다고 에둘러 말씀드린 것은 내가 보기에도 80만 원은 너무 비싸 보였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여쭤는 볼 수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말을 꺼냈던 나였지만, 제주도 여행은 어떠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나는 꼭 일본을 가야겠다는 마음에 사로잡혔다. 만약 어머니께서 흔쾌히 일본을 보내주신다고 했을 때, 과연 내가 제주도로 선택을 바꿨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제주도를 권하는 어머니의 말씀은 마치 일본이라는 선택지는 애초에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결과는 같을지라도 선택을 하지 않는 것과 선택을 할 수 없는 것은 천지차이다. 그 사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 나는 에둘러 말하지 않고 일본에 보내주면 안 되냐고, 일본에 가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결국 나는 어머니의 입을 통해 '보내주고는 싶은데 좀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다시 제주도를 권하시던 어머니. 지금 생각해 보면 말투를 비롯한 모든 것이 전부 '아들이 상심하지 않았으면'하는 마음으로 신경을 써주신 것일진대 내 입술은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아무런 말이나 내뱉었다.
제주도 가면 버스 타고 이동하고 사진 찍는 게 전부라던데!
그럼 버스에서 수학여행 동안 잘 처자다가 오면 되겠네!
엄마를 뒤로하고 방으로 쌩하니 돌아와 문을 닫는 내 모습은 언제나 회상할 때마다 부끄럽다. 문을 닫고 3초 정도가 지났다. 그렇지 않아도 문이 좀 세게 닫혔기에 걱정이 들었는데 역시나 아버지는 화가 많이 나신 목소리로 당장 나와보라고 말씀하셨다.
넌 우리 집에 대해 뭘 얼마나 아냐?
아빠는 이 물음으로 대화를 시작하셨다. 아빠가 얼마를 벌고, 우리 집에서 한 달에 대략 얼마가 필요한 지부터 시작해서 처음으로 마주한 우리 집 경제 사정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고, 내가 입 밖으로 내었던 말에 대해 부끄러워 숨고 싶어졌다. 내가 부모님께 간섭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용돈? 아르바이트? 일본 수학여행? 내가 해왔던 고민은 너무나 보잘것없었고 배부른 소리였다.
1년 중 건강원이 가장 잘 되는 가을이면 오랜만에 끊이지 않는 일감에 아버지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외면했던 내 모습이, 집에서 놀다가 불려 나와서 일 시킨다고 온갖 짜증을 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식사를 끝내기 무섭게 나가서 투잡으로 콜벤을 운행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겼던 모습이 부끄러웠다. 항상 고되고, 피곤하고, 쉼이 없었던 아버지를 보며 속으로 '아빠처럼 사는 건 정말 재미없겠어.'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버지도 취미가 있었고, 아버지의 삶이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을 가장의 책임 때문에 억지로 내려놓으신 것이 아닌, 불평 한마디 없이 기꺼이 내려놓으셨다. 묵묵히 가정을 지키며 자신의 삶을 쏟으신 아버지의 삶을 나는 그날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간 당연하다고 내 눈에는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온 것이 죄송해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내게 일본이 체크된 신청서를 내밀면서 말씀하셨다.
아들~! 한번 가는 수학여행, 일본 다녀와!
간밤에 아버지와 충분히 얘기를 나눠보시고 내린 결정이니 걱정 말고 다녀오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조용히 웃으며 말씀을 드렸다.
저도 간밤에 생각해 봤는데, 너무 안 좋게만 생각한 것 같아요.
제주도도 기대되고 재밌을 것 같아요. 그래서 가고 싶어 졌어요.
어머니께 이것이 어쩔 수 없이 택한 선택이 아님을 잘 설명하며 나는 일본에 체크된 표기를 볼펜으로 지우고 제주도에 표시를 했다. 선택을 하지 않는 것과 선택을 할 수 없는 것은 다르다. 학교를 향하며 반으로 접은 신청서를 다시금 펼쳐보았다. 그곳에는 자녀에게 모든 선택지를 열어주고자 하셨던 부모님의 사랑이 담겨있음을 아들은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눈에 담긴 커다란 부모님의 사랑이 혹여 떨어질세라 나는 더 크게 눈을 뜨며 발걸음을 옮겼고, 조금은 더 철이 들었다.
할 수 없음과 하지 않음 사이, 당신의 선택은 무엇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