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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보다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나는 이유

우리는 모두 인정을 갈망한다.

by 유화

이 땅의 모든 남자들이 바라는 것은 인정일 것이다. 관계를 쌓지 않은 상태에서도 주어진 사실만 가지고도 우리는 누군가를 인정할 수 있지만 깊고 친밀하게 관계를 쌓은 대상으로부터 받는 인정은 우리의 내면을 풍성하게 채운다.


배우자, 형제자매, 회사 동료, 친구 등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지만 따로 관계를 맺지 않아도 처음부터 있었던 관계가 있다. 바로 부모님이다. 나의 뿌리요. 나를 보호해 주던 든든한 울타리이자 지붕 같은 존재로부터 받는 인정은 나름의 큰 의미가 있다. 나에게는 그런 존재가 바로 아버지였다. 어머니와는 더 친밀하고 편안한 관계였지만 아버지와의 관계는 좀 어렵고 서먹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가 우리 가정을 책임지고 보호하며 이끌어간다는 것은 어릴 적부터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아버지와 인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시험이 끝나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너도 나도 운전면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겨울방학이 되면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동안에 운전면허를 취득할 것이라고 했고 나 또한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친구들처럼 운전면허 학원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미리 알아봤다는 친구를 통해 약 90만 원이나 되는 학원비에 대해 듣게 되었을 때 나는 깔끔하게 마음을 접었다.


부모님께서 운전면허 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셨던 것은 아니다. 요즘 애들 다 면허 따러 다닌다는데 너도 뭐 학원이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내게 물어보셨다. 그때 나는 당장은 필요 없고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부모님께서 학원비를 지원해 주신다는 친구를 부러워하지 않았고, 학원비 앞에 위축되는 나를 친구와 비교하며 비관하지도 않았다. 그저 각자의 때가 있고 기회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였기에 그 기회는 내가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운전면허는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학원을 등록하고 한 번에 붙어서 취득했다. 면허증이 나오면 다들 그렇겠지만 자꾸만 운전이 하고 싶어 졌다. 마트를 갈 때도 운전하고,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동생이 야간자율학습을 마치면 데려오기도 하는 등 기회가 없으면 만들고, 기회가 오면 잡는다.


그렇게 반년쯤 지났을까 늘 산보다는 바다를 택했던 나였기에 부모님께 혼자서 차를 끌고 강릉에 바다를 보러 다녀온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나에게 돌아온 것은 아버지의 완강한 거절이었다.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안전하게 조심해서 다녀오겠다는 설득도 아버지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경험도 없는 녀석이 무슨 고속도로야! 안돼!



살면서 부모님으로부터 수많은 허락과 거절을 받아왔으나 어째서 이번 거절은 곧 '인정받지 못함'으로 내 가슴에 깊이 남았는가 가만히 돌아보면, 아무래도 나 스스로 뭔가를 더 할 수 없는 무력함 때문이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경험이 없기에 기회조차 없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도해 볼 기회도 없으면 대체 어디서 어떻게 경험을 쌓으라는 말인가.


중학교 2학년 즈음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자영업.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는 생활이 아니었기에 우리 가정을 지키기 위해 투잡에 때때로 아르바이트까지 늘 바쁘고 부지런하셨던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나와 동승하여 가까운 지역이라도 고속도로를 통해 나가 볼 수나 있었을까? 그럴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말씀은 내게는 모든 기회를 박탈하고 올라갈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 지난 지금이야 혼자서 강릉을 차를 몰고 다녀오겠다는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걱정을 이해하지만 그 당시에는 얼마나 내가 못 미더웠기에 그렇게 말씀을 하시나 싶어 눈물이 왈칵 나왔고 흐르는 눈물만큼 큰소리로 맞섰다.


그럼 뭐 말없이 렌터카 빌려서 몰래 고속도로 타고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며 경험을 쌓으면 그땐 키 주실 겁니까?!
그러지 않고서야 아버지 말대로면
뭔 경험을 어디서 어떻게 쌓아요!



일방적으로 대화를 마무리하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달래려 렌터카 정보라도 알아보려 했지만 컴퓨터는 거실에 있었고 나는 문을 열고 나가고 싶지 않았기에 포기했다. 일찌감치 잠이나 자려고 불을 끄고 누웠는데 어머니께서 들어오셔서 말씀하셨다.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설득하셔서 허락을 받으신 것이다.


그 후, 나는 결국 내 손으로 직접 차를 몰고 강릉에 갔고 원하던 대로 바다를 보았다. 하지만 그날의 바다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내 머릿속에는 안전하게 돌아가서 아버지의 허락이 틀린 선택이 아니었음을 인정받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집을 나서는 나에게 아버지는 다른 곳을 바라보시면서 안전하게 다녀오라고 말씀하셨다. 첫 장거리 운전을 무사히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조용히 웃으시며 잘 다녀왔구나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가 깊고 강하게 느끼는 것만이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이 소중하고 아름다울 때 비로소 그것을 추억이라 부른다. 혼자 강릉 바다를 보러 가겠다고 그 난리를 쳤던 것 치고, 바다보다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나는 것을 보면 나는 아무래도 그날 돌아와서 들었던 '잘 다녀왔구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추억하는 것이리라.


'아버지의 인정'이라는 이름으로, 마음 깊이 말이다.



당신이 처음으로 인정받았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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