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의미 없는 그들만의 성장
작은 일에도 마음이 흔들렸다. 이런 내가 싫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냥 그게 싫다고만 생각했다. 요동치는 내 마음을 위한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으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걸 느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나름의 위안을 얻게 되었다. 나와 같이 예민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또 한편으로는 일부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한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잠시의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더 큰 자극이 오고 내가 온전치 못한 상황이었을 때는 마음에 태풍이 휘몰아쳤다. 시간이 갈수록 더 불편해졌다. 하지만 잘 참아낼 수 있다는 잘못된 자기 위안으로만 버텨냈다. 근본적인 문제를 바로 잡지 못한 채 계속 버텨내고만 있었다.
배려가 중요하다고 한다. 나 역시 배려를 굉장히 중요한 인성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배려의 대상은 누구인가? 보통 바로 떠오르는 것은 내가 아닌 상대방이다. 물론 상대는 중요하다. 나와 마주하거나 나의 옆에 지금 있는 사람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시점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배려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배려는 어떤가? 자신의 속은 곪아 터지기 직전인데 겨우겨우 참아내며 버티는 것이 자신에 대한 배려인가? 그렇게 참는 것이 또한 상대에 대한 배려일까? 자신과 상대 모두에게 참된 배려가 아니다. 또 눈치를 보고 있다. 자신에게 그리고 상대에게 말이다.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다는 잘못된 주문을 외우고 있다. 전혀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며 상황에 대해, 상대에 대해, 자신에 대해 잘못된 배려를 하고 있다. 솔직한 표현을 해야 한다. 참고 버티며 거짓된 표현을 하는 것은 참된 배려가 아니다. 자신에게도 상대에게도 상황에게도 말이다. 이는 마음의 요동에 지속적인 연료를 제공하고 축적시키며 잘못된 방향으로 요동의 진폭을 늘리는 셈이다.
잘못된 배려와 비슷하게 조심해야 할 것은 미리 단정 짓는 것이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그리고 시도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단정 짓거나 섣불리 판단하는 습관은 나쁘다. 잘못된 배려가 ‘그럴 것이다.’라는 잘못된 단정의 영향을 받는다고 볼 때, 미리 단정 짓는 습관은 고쳐야 한다. 상황을 제한적으로 만들 뿐 아니라 잘못된 배려의 상황으로 만든다.
이렇게 나는 자신에게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계속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름의 노력을 했다. 그러나 그 노력은 본질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아니었다. 상황을 조금 바꿔보기 위한 시도였다. 이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자신에게 참된 배려를 하지 못한다는 명분으로 포기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것을 나름의 노력으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일시적으로는 마음이 가라앉는 듯했다. 하지만 더 큰 마음의 요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마음이 요동쳤다. 사실 노력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잘못된 노력으로 마음이 계속 요동친 것이다. 이러한 내부 상황에 성장의 지속성은커녕 성장의 싹이 자라날 자리도 없었다.
‘어차피 한 판 붙기 위해 태어난 삶이 아닌가!’는 나의 좌우명이다. 1990년대 자기계발서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7막 7장』이라는 책에서 홍정욱 저자가 말했던 의지 중에 하나를 인용했다. 나는 이 말을 힘이 들 때마다 외쳤다. 나는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부딪치며 살았다. 그런데 나름 잘 해낸 시기도 이끌려 가는 삶이었다. 성실을 강요하며 나에게 좌우명을 강요하고 있었다. 나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괜한 채찍질만 해대고 있었다. 표면적인 성장은 계속 이루어지는 듯했다. 숫자로 이루어진 나이라는 것이 늘어갈 때 괜히 많이 성숙했다고 느꼈다. 내가 하는 의사결정은 모두 옳은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과정을 관통해서 보면 계속 이끌려 가는 삶이었다. 마음의 요동들은 당연히 수반되는 작은 움직임일 뿐이라며 잘못된 위로를 했다. 어디에도 내가 주인인 요소가 없는데 보여주기만 하는 셈이었다. 그게 맞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런 채찍질로 단기적인 결과는 계속 얻어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결과들은 내가 원한 것이긴 했지만 사회로부터 먼저 주어진 후 내가 원한 것이었다. 내가 먼저 진정으로 원한 것들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강점을 부러워하고 흉내 내며 뒤쫓아 가려는 삶이었다. 그래서 이끌려 갔던 것이다. 성실하긴 했다. 그러나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었다. 성실한 하루하루의 일꾼일 뿐이었다.
이끌려가는 삶은 일시적인 삶이기도 하다. 얼마나 막막한 삶인가. 정말 현실을 버텨내고 살아내는 삶이다. 내가 주인이 아니다. 수동적이다. 우리가 수동적으로 변하게 되는 보통의 상황을 살펴보자. 나는 공정성에 의문을 갖게 되는 상황과 과정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희생적으로 열심히 일하고 승진할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가 승진에서 밀리는 경우가 있다. 또는 회사 업무와 관계없는 일로 부당하게 대우받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경우, 그 답례로 내가 손해 보게 될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무언가 나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 한 추가적인 어떤 일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러한 상황의 본질은 사실 수동적이고 이끌리며 일시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서 나의 행동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이 일시적이라는 말이다. 나를 지키겠다는 부정적인 반응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일시적이다. 혹은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 결국 무엇을 얻게 될까?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하게 될 위험이 크다. 왜냐하면 외부 상황에만 주의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일시적인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면 앞이 안 보인다. 당연히 목표를 세울 의지도 생기지 않는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이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한다. 당연히 그 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이 무의미한 일들로 여겨진다.
취업이 되지 않는 취업준비생, 준비하는 시험에 떨어지고 다시 공부를 하는 학생, 쉬는 날 없이 무한 반복되는 출퇴근과 야근에 지친 직장인 모두 앞이 안 보이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앞이 안 보일 때 일시적인 삶을 살아내고 있지 않은지 자신에게 물었을 것이다. 의지가 사라지고 불안함 속에서의 삶은 계속 흔들리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쉽게 떠오르지 않고 현실을 박차고 떠날 용기는 더더욱 나지 않는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의미’라는 내 안의 원석을 찾는 여정으로 지금 함께 하고 있다. 이 책과 함께.
내가 삶에서 ‘의미’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주신 분이 있다. 여러 책에서 인용되고 있는 빅터 프랭클 박사다. 그는 1905년 오스트리아의 빈 출신 정신과 의사다.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3년 동안 아우슈비츠와 다카우 수용소 등의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다 살아 돌아왔다. 강제수용소를 거치면서 아버지, 어머니, 아내, 형제를 모두 잃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은 어떠한 순간에도 삶에는 의미가 존재한다.’라는 확신을 직접 체험하고 보여주었다.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해 준 분이다. 그리고 내가 의미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며 책을 통해 계속해서 만나고 있다. 의미공학이라는 자기계발 방법론이자 성장법을 연구하며 계속해서 대화하고 있다. 이 책에는 의미와 관련된 빅터 프랭클 박사의 체험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연구 내용이 자주 등장할 것이다.
일시적인 삶에 대해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강제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으로 간주하고,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도 기회가 있었고, 도전이 있었다고 전한다. 결국 일시적인 삶에서도 선택은 내가 한다는 말이다. 부정적인 시각으로 일시적인 삶으로 느껴지는 지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다. 비현실적으로 간주한다면 삶의 의지를 잃을 것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려고 하는 선택을 하면 삶의 의지를 발견할 것이다. 그래서 프랭클 박사는 주어진 상황에 반응하는 태도, 즉 우리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자유를 강조했다. 자신의 반응을 선택하는 인간의 힘이 존재한다고 했다. 일시적인 삶으로 느껴지는 현실에도 우리는 의미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내 인생이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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