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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 Mar 23. 2021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내가 회사에서 배운 것

어딜 가도 편차는 있겠지만, 대기업에서 개개인의 업무량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회사에서 틀어주는 몇 시간 짜리 환경안전 영상을 양반다리 하고 앉아 정주행하는 이도 있는가하면(물론 바람직한 일이다, 절대 다수가 일에 치여서 못할 뿐), 하루종일 숨도 못쉬고 일했다는 이도 있고, 너무 정신의 힘이 깎여서 그런 불평도 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

나의 경우엔 입사 후 내내 일이 적은 조직에서 방치되어 있다가, 삼년차에 가장 정신없이 바쁘고 시달리는 조직으로 업무 이동을 했다. 그게 작년 10월의 일이었다. 심지어 나와 함께 일하기로 되어 있던 유능하고 사람좋은, 그래서 비현실적이었던 사수는 2주의 인수인계 후 5개월 간 휴직에 들어갔다. 날마다 들이붓듯 쏟아지는 업무를 하루아침에 홀로 감당하게 된 5개월 동안, 나의 매일매일은 계속해서 망가져갔다. 이전에도 회사 생활에서 보람이나 성장, 재미를 찾긴 어려웠지만, 부서 이동 후 나는 계속해서 '아, 어두운 터널을 지난다는 건 이런 거구나'하고 점점 더 새롭게 깨달았다. 절대적인 업무의 양보다도, 의미와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시간의 압박 속에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일들을 쳐내야 하는 일상과, 그 가운데 믿고 조언을 구할 선배가 없다는 것,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말, 그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과 초조감이 어둠처럼 짓눌렀다.

두 달 가량 글을 쓰지 못했던 것은 그래서다. 마음의 부품이 고장나 삐걱거리는 것처럼,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이렇게나 헤매이면서, 두려우면서, 어떤 글을 쓴단 말인가. 그러니 오늘, 노트북을 다시 열 수 있었던 것은 사수가 나의 사무실로 복귀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직 아무런 일도 시작하지 않았지만 사무실 한 켠에 앉아있단 사실만으로 나에게 안정감을 줬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여전히 글을 쓰면서 자주 막막해지는 것은, 더이상 사수의 존재는 나에게 그리 큰 의미가 되지 못하기도 하는 때문이다.

내가 어찌 지냈는지 아는 주변 사람들은 모두 사수의 귀환을 축하해줬지만(이쯤되면 예수재림이다), 막상 나 스스로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그동안 너무 많은 걸 보고 듣고 경험하며, 이곳에 너무 지쳐버린 탓이다. 마음은 이미 질려서, 어떤 조건의 차이들이 더이상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젯밤, 잠자리에 누워 생각한 오늘은 설레고 기대되기보단 차라리 두려운 것에 가까웠다. 이건 분명 터널의 끝이어야 맞지만, 빛을 느낄 수가 없었으니까.

때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채로 더듬더듬 걸어가야 할 때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저 해내는 게 습관이 되어서, 못하겠다는 낙오의 말이 용납되지 않는 이곳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멈추지 못한다. 지난 몇 달 간 숨쉬듯이 멈춤을 생각했다. 그만하고 쉬어야하지 않을까, 이러다 정말 나를 망가뜨리면 어쩌나, 하고. 그러지 못했던 것은 어떤 불안이나 두려움 같은 이름이 아니라 습관이었다. 스스로를 멈추지 못하는 나 자신. 주어진 걸 해내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나.

이제 터널의 가장자리에 주저앉아서 생각한다. 이 모퉁이를 돌면 끝일지도 모르지만, 빛이 들기 직전이라도 좀 쉬어가자고. 아무것도 해내지 말고, 제 역할을 다하지도 말고, 자랑스러운 누군가가 되지도 말고, 마음껏 세상과 지인들을 실망시키자고. 그렇게 다짐해도 습관은 무서운 것이라서 알람에 맞춰 눈을 뜨겠지만.


마음의 안정이나 기쁨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쉽고, 생존은 언제나 앞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내가 회사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마음의 안정과 기쁘고 즐거운 일상은 생존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찌보면 가장 상투적인 말인데, 나는 이곳에서 사람은 영혼이 가난한 채 살 수 없다는 걸 배웠다.

내가 회사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이 어두운 터널 속에서 찾은 빛이 있다면 오직 이것이다. 사람은 영혼이 가난한 채 살 수 없다는 것, 그 말은 조금도 상투적이지도 유치하지도 않은 진실이라는 것. 나는 이곳에서 영혼의 가난은 전염성을 띄고 있으며, 병이 퍼진 곳에서 삶을 누릴 수는 없다는 걸 배웠다. 성장만을 쫓는 문화는 여유없는 사람들을 만들고, 그런 곳에서 행복할 수는 없다는 걸 배웠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잃어서는 안 될 것, 세상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도 있다는 걸 배웠다. 영혼의 상처는 번진다는 것, 한 사람의 안에서도, 다른 이들에게도,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곳에서 마음은 죽어버린다는 걸 배웠다. 가장 중요하게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 수 있다 해도, 내가 그래야하는 것은 아니며 나는 그럴 수 없다는 걸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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