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할 땐 카레를 먹으며
오랜만에 대학 친구를 만났다.
시를 읽는 모임을 같이 했던 친구인데, 우리는 모두가 서로에게 말을 높이는 문화였고 나와 친구도 그랬다. 서로 존대하고 ‘00씨’하고 호칭하면서도 허물없이 친해질 수 있다는 걸 그 모임에서 배웠고, 술을 먹지 않고도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걸 그 모임에서 깨달았다. 그렇게 그곳은 지금 속한 사회와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여전히 마음의 고향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친구와 동네 카페에 앉아서 학교 앞 파스타집 같은 맛이 나는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호호 불어 마시자니 저절로 그때 생각이 났는데, 떠올린 기억은 슬프게도 행복에 대한 거였다.
언젠가 졸업학기 즈음, 카페에 마주앉아 과제를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00씨, 저 행복하지가 않아요”
하고 말했던 기억.
왠지 그 기억은 이후에도 나에게 오래 붙어 남아서, 종종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곤 한다.
진로고 미래고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던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은 없구나 곱씹다가, 친구에게
“그런데요, 우리가 언젠가 만나 요즘 전 너무 행복해요, 잘 지내요, 하고 말하는 날이 올까요?” 물었다.
친구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그렇진 않을 거라 답했다. 행복이라는 건 그렇게 뚜렷한 대상이 아니라서 말하는 순간 사라질 듯한 어떤 것, 연기나 그림자 같이 느껴지니까,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면 바로 도망가버릴 게 분명하다고.
행복이라는 건 완전한 개념이니 그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완전이란 결코 올 수 없는 것이라서, 어쩌면 행복은 과거나 미래 시제로만 말해질 수 있고, 지금을 설명하기엔 언제나 조금 모자라거나 아직 당도하지 않은 것.
그럼 ‘행복’이라는 개념에 있어서 난 언제나 항상 모자란 사람이 되고 마는 걸까.
몇 주 전에는 같은 모임에 있던 언니와도 만났다.
언니는 지금까지 한 회사에 정착하지 않고 그때 그때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가게를 하거나 현대무용과 디자인을 배우며 살고 있다. 설명으로 느껴지는 것과는 달리 돈이 많거나 고민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냥 언니는 언니대로 산다. 나는 물론 내 주변의 누구와도 너무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진 언니를 수요일 저녁 퇴근길에 만나 태국 음식을 먹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는 지금 또 행복하지가 않구나. 그래서 자꾸만 다른 삶을 기웃거리고 궁금해하는 거구나. 이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태국 음식을 먹는다고 해결될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구나. 그래서 언니에게 이렇게 묻고 마는구나.
언니, 언니는 행복해?
궁금했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사람, 대기업 사무실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지 않는 사람은 행복할까. 행복은 그런 곳에 있는 걸까. 충분히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토마토 스파게티나 팟타이꿍을 먹으며 내 삶에 번번이 의문을 제기한다면, 그걸 좋은 삶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언니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음...요즘은 행복에 대해서 그닥 많이 생각하질 않는 거 같아.” 하고 답했다.
“유자야, 안 행복해...?” 하는 언니 특유의 걱정어린 질문과 함께.
글쎄, 넘치진 않는 거 같지 아마.
당시엔 별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 혼자 저녁으로 카레를 먹으며 행복에 있어선 그게 핵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난 몇 년 전 삿포로 여행에서 스프카레를 먹어본 이후로, 그 추운 지역에서 오래 기다려 좁은 방에 앉아 뜨끈한 카레를 먹는 행위를 통해 조금 위로 받았고, 마음이 허할 때면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 카레를 먹으러 가곤 했다. 스프카레를 파는 곳은 잘 없으니까, 그냥 카레에 만족하면서. 그날도 퇴근을 하고 카레를 후후 불어 먹다보니 언니의 말이 떠올랐던 거다.
행복의 조건이란, 행복에 대해 그닥 많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삶에 있다고. 과연 잘 살고 있는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담백한 결정들에. 행복이 나를 지나치지도, 내가 행복에게 모자라지도 않은, 그냥 그것과 무관하게 살아갈 수 있는 보다 온전한 시간들에. 뜨끈한 스프카레를 먹는 것과 같은 일들에.
당장 가진 걸 잃을지도 모르는 회사 밖으로 나설 만큼의 용기가 없지만, 행복에 대해서는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행복은 도래하기에 너무 늦거나, 알아차리기에 너무 빠른 것이니.
대신 불행할 때는 카레를 먹고, 좋은 사람들에게 덧없는 질문을 하고, 그렇게 기웃거린 다른 세계로 떠날 준비를 조금씩 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