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을 알아듣고 기억하기 시작할 때 쯤부터 아빠는 내게 이런말을 하곤 했다.
"너만의 것을 창조해야 한다"
유년시절부터 학창시절, 대학시절, 취업을 하고 20대 후반 독립하기 전까지, 난 항상 저 말들을 듣고 살곤 했다. 보통 부모님이라면,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 며, 자기 자신도 가본적 없는 세속적 법칙들을 아무 의심없이 자식에게 주입하곤 할텐데, 아빠는 그러지 않았다.
사실 저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아빠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이기 했다. 그래서 그것은 항상 진실되었다. 진실되었기에 저 말은 내 무의식에 뿌리깊게 박혔다.
만 스무살이었던 2007년, 자기를 온전히 음악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생활했던 일은, 이런 내 무의식이 반영된 현실이었다. 각자 다른 모양과 빛깔의 원석들을 옆에서 바라보는 건, 정말이지 벅찬 경험이었다. 그것은 항상 진실되었다. 진실되었기에 저 모습들은 내 무의식에 뿌리 깊게 박혔다. 난 아빠의 DSLR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그들을 기록했다. 그들의 모습을, 그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에너지를.
시간이 흘러 어느덧 아빠가 내게 저 말을 하기 시작했던 그 나이에 이르기 시작한 지금. 아빠가 했던 저 말을 내 딸과 내 주변사람에게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다. 하지만 뉘앙스는 좀 다르다. '너만의 것을 창조해야 한다'기 보다, 이미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단지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 가기만 하면 된다고.
이번주에는 한 친구를 만나 여기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친구는 지금 자신으로 되돌가는 여정 위에 있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원형‘을 되찾고 있다고 했다. 아주 어렸을 때, 자신의 기억이 시작되는 그 지점부터.
와인향과 음악이 감도는 거실에서, 소파를 등받이 삼아 바닥에 앉은 채로 그 친구와 그의 아내, 그리고 나는 밤이 깊어가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말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저도 진짜 많은 영향이 있었어요. 아까도 말씀드렸는데, 일단 제가 믿는 모든 거를 다 재점검을 한번 해봤어요.
(중략)
개발자가 왜 되고 싶었나... 세상을 바꾸고 싶다. 근데 내가 진짜 원하나. 내가 이걸 했을 때 행복한가. 또 그건 아닌거 같아. 근데 저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거를 좋아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어떤 앱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즐겁게 써주면 좋다. 그래서 그 앱도 아내가 즐거워하니까 한거거든요. 백엔드 개발자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냥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다는걸 안거죠. 근데 또 생각해보니까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데에 내가 꼭 개발만 고집할 필요도 없는거 아닌가..“
“굳이 남들이 멋있다 생각하는거 말고 내가 좋아하는거. 제가 인생에서 좋아하는게 뭐가 있냐면은 ○○ 랑 ○○ 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두개를 할거에요. 아까 원형으로 가야된다고 했잖아요. 그 원형이 아닌가. '○○ 하는 XX가' 그 원형에 가까워질 수록 문제도 없고, 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거짓된 어필을 할 필요도 없이 내 세상을 만들 수 있는거죠. “
나는 말했다.
"맞아. 그거야말로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어요. 자기를 꾸며내고 있고 거짓으로 포장하면, 사람들이 다 알게 모르게 느낌으로 알아요. 그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를 불편감을 느껴.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허위를 다른 사람을 통해 굳이 보고 싶진 않거든.
비록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만, 다른 사람의 진실된 모습을 보면서 거기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예술 작품을 볼 때 감흥을 느끼는 것 아닐까? 이 사람이 직면한 고뇌, 고통, 환희.. 이런 것들이 느껴지니까. (맞아 리얼함.)
"리얼함은 결국에는 Raw함이지. 나는 앞으로 그게 되게 중요할 것 같아요. 다른 것들을 흉내내는 건, 굳이 인간이 아니라도 프로그래밍화 되서 이제는 기계가 할 수 있는거잖아요.
인간으로 태어나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것들을 이제는 드러낼 수 있는 여러 환경들이 주어졌고, 그러면 이렇게 고유성과 다양성들을 자유롭게 드러내면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인간다움을 펼치는게 앞으로는 더 중요해지는 것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는게 되게 좋아요. 그래서 이걸 잘 지켜주고 싶어요. 내가 뭐 큰 힘이 있는건 아니지만, 그냥 응원하는거지. 파이팅 이러면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은 서서히 드러나지 않는다. 미세한 시그널들이 모여, 어느날 불현듯, 사건처럼 일어난다. 자신이 해야하는 일은 그 미세한 시그널들을 관찰하고, 그 사건이 나에게 오게끔 허용하는 것 뿐이다. 스스로에게 그 사건이 일어나게끔 허용하면, 그 일은 나에게 무수한 가능성을 건네준다. 다행히 그 친구는 그걸 아는 사람이었다. 그 친구는 말했다.
이런 느낌이었어. 그냥 그 일이 일어났어야 돼.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한 사람들의 증인이 되기 위해 난 오늘도 이렇게 기억하고, 기록한다. 18년 전, 스무살의 내가 그러했던 것 처럼. 어쩌면 나 또한 나 자신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