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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Aug 11. 2021

일단 살고 볼 일이다

마이너 인생도 그리 걱정할 것 없네






 어제 집 근처 놀이터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 일단 살고 보자.’

요즘 가벼운 산책을 운동 삼아 지내고 있다가 문득 떠오른 문장이었다. 입으론 살아야지 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는 아직까지도 사느냐 마느냐의 기로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31년간 살아와놓고 왜 이런 소릴 하냐 하겠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지속적인 멘탈 문제와 마주하면서 대단히 지쳐있었다. 비슷한 문제로 힘들어 하는 친구와도 반우스개소리지만 장난기 없는 말투로 번개탄 피울 뻔했다는 소리를 몇 번 늘어놓곤 했었다. 그 정도로 정신적으로 피폐한 상황에 놓여있었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왜 내가 이런 생각의 전환을 이루게 되었냐면, 찬찬히 기억들을 돌이켜 보니 위기의 상황에도 어떻게든 살 수는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엔 다시 일자리를 박차고 나오며 빠듯한 자취 생활을 끝낸 후, 본가로 다시 기어들어왔다. 자본주의에 무릎을 털썩 꿇고 통장 잔고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과 함께 의사 선생님의 권고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 상태가 오죽하면 “혼자 사는 건 위험하니 집으로 들어가세요.”라고 하셨을까 싶다. 그렇게 어딘가 패배자가 된 기분으로 부모님 곁에 머물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함께 지내보니 생각보다 너무 좋은 게 아닌가. 그동안의 오해를 풀고 나니 혼자 살 때보다 마음이 편하고 안정감이 느껴진다는 걸 안 것이다. 지난번 집을 박차고 나올 때의 묘한 해방감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가족의 온기를 갈구하는 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또 그것만 좋은 건 아니었다.          





 본가에서 머문 1년간의 가계부를 계산기로 두드려보았다. 직장을 다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매달 수입이 지출보다 많았다. 생활비 감소와 함께 주식, 블로그 수입, 절약의 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만들어낸 결과였다. 어쨌든 간에 난 빚 하나 없는 흑자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봤자 매달 몇만 원 내지는 몇십만 원 정도의 흑자지만 마이너스는 아니니까 이 정도면 살만한 것 아닌가 싶다. 물론 외부적으로 봤을 때는 본가에 얹혀사는 부끄러운 캥거루족이지만, 흑자 가계부라면 태연하게 숟가락 하나 얹는 거야 아무렴 어떻겠나. 부모님도 나와 지내면서 도움받는 걸 기뻐하시기도 하고 은근히 속 썩여온 딸내미를 곁에라도 둬야 안심하시는 듯해서 최소한의 효도라고 생각하며 정신승리 중이다.      





         

 이렇게 지나온 시간들을 뒤적여보면서 돈은 넉넉하게 쓸 수 없어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는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오랜 기간 나를 흔들어놓은 생존에 대한 불안감도 반으로 줄어들었다. 방황이 특기인 31년산 인간의 깨달음이다. 또 팔고 나면 더 오르는 주가처럼 앞일은 알 수 없으니 막연하게라도 뭔가 기대하면서 사는 게 속 편한 마인드라는 것도 절감했다. 뭐 어떤가. 오히려 정석대로 버티며 사는 건 어려운 일이니 좀 배고파도 그렇게 살지 않는 자유로운 길이 나에겐 더 맞을지도 모른다. 






 머리를 써도 안 풀렸고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던 과거를 생각하면 난 마이너 인생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다. 지난 날의 모든 것이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으니 배움의 여정이었다 생각하면 납득이 된다고 본다. 또한 다행히 그나마 육체적 병은 없고 나름 건강한 생활습관도 가지고 있으니 불필요한 걱정들은 그만 내려놓기로 했다. 정말로 꾸역꾸역 살아내 보니 인생 뭐 그리 심각하게 걱정할 것도 없고 이젠 살고 볼 일만 남았다 싶다. 결국 좋은 게 좋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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