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퇴사는 아니지만
연이은 장마와 호우주의보에 지친 요즘, 몸과 마음도 지친 끝에 결국 사직서를 내던졌다. 다시 백수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그래도 약 1년 3개월 정도를 다닌 거니까 나 치고는 오래 잘 다녔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 그 회사에서 일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는데 이제 솔직히 말해보자. 서서 일하면 다리와 골반이 아프고, 앉아서 일하면 어깨가 아파서 정말 매일 안 아픈 날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로지 재직기간 1년을 넘겨보자는 일념 하나로 없는 힘 쥐어짜가며 다닌 거였다. 일찍이 가능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잘했어, 대단해라고 말해주고 싶다.
신경증으로 은둔형 외톨이와 비슷한 생활을 반복했던 내가 1년 넘게 사회생활을 어찌어찌 풀어나갔다는 점, 그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덧붙여 이 회사에서 내가 처음 세웠던 목표를 초과 달성해서 더 이상 애쓸 필요는 없다는 것과 부모님과 함께 사는 캥거루족이기도 하지만 입사 후로 저축액이 2천만원 넘게 늘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다시 생겼다는 것, 이 세 가지가 충족된 까닭이다. 그리고 내가 퇴사하는데 남들에게 이러쿵저러쿵 변명하는 것 같아 이상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재취업 준비를 하고는 있었다. 그게 충분할지는 모를 일이지만.
우선 나는 블로그를 거의 5년 정도 했는데, 거기에 포트폴리오로 활용할 방법을 궁리해서 일본어 학습자료를 직접 만들어 포스팅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학교 동기가 운영하는 유튜브에 일본어 자막을 만드는 일을 맡아서 일주일에 2-3시간씩 번역에 투자하고 있는 상황(무보수지만). 그나마, 내가 대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된 마당에 현재에도 손 놓지 않고 뭐라도 하려고 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활동들이 재취업에 먹힐지는 모르지만 앞으로의 시간은 벌었으니 계속해보기로 했다.
실은 한 회사에서 연락이 오긴 했는데 뭔가 느낌이 안 좋게 다가와서 면접은 가지 않았다. 촉이란 게 생긴 건지, 자신감이 생긴 건지 몰라도 경력도 제대로 못 쌓은 30대가 그렇게 가리는 이유는 과거의 경험 때문인 건 당연하다. 무작정 이상한 회사에 들어가서 온갖 상처와 수모를 겪다간 내 멘탈이 견뎌내지 못할 게 뻔하니까. 왜 그것도 못 견디냐는 말은 하지도 마시라. 사람들의 모든 조건이 똑같게 태어나서 자라면 할 말이 없지만 내가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걸 어찌하겠나. 세상이 냉혹하다는 걸 아는 만큼 나도 자신을 보호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건 당연한 얘기다.
솔직히 좋은 직장 안 바라고 역시나 힘들더라도 애쓰면 다닐 수는 있는 직장이면 된다. 주변의 직장인들의 이야기도 많이 전해 들으면서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내가 살고 있는 소도시를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번 돈 전부 털어서 일을 시작하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추진하기로 결심했다. 통장에 돈 떨어질 때까지는 어디라도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도 있지만 정 안 되면 단기 알바라도 뛰어가면서 또 나아가면 된다. 잘 안 풀린다고 해도 원래 그런 인생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기대치가 낮아서 괜찮으니까. 마지막으로 나에게, 또는 비슷한 상황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야 너, 일단 저질렀고 앞으로도 저질러라.
그래야 재밌게라도 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