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무연고자 환자가 입원을 했다. 인지도 비교적 명료하시고 대화도 가능했다. 자신의 남은 시간을 직감했는지 마지막으로 가족을 찾고 싶어 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누님들이 계신다고 했다. 어린 시절 가출해 혼자 생활하였고 수십 년간 가족을 찾지 않았다고 했다. 암이 발병했고 치료를 받았으나 호스피스에 입원한 이상 남은 시간은 가족을 찾고 꼭 만나고 싶다고 했다. 어린 시절 자신을 잘 챙겨주었던 기억 속의 누님은 자신이 아프다고 하면 한달음에 달려올 것이라고 했다.
수십 년간 찾지 않은 가족을 찾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핏줄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그래도 나만 바라보며 하루하루 말라가는 환자를 위해 무언가라도 해야 했다. 동사무소에 연락해 사정을 설명하고 중간 다리역할을 해 달라 부탁했다. 형제분들은 고령으로 사망한 분들이 다수이고 환자의 바로 윗 누님이 한분 계시나 연락처가 없다고 했다. 환자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인지력이 떨어져 가는 환자가 누님이 살던 동네 이름을 며칠 만에 기억해 냈다. 동네이름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고민 끝에 마을회관을 찾았다. 요즘은 마을회관에 전화, 에어컨, 난방등이 잘되어 있고 동네주민들이 모여 식사를 해결하기도 한다. 시골에 계시는 엄마도 늘 전화를 하면 동네회관에 계시는 경우가 많아 어쩌면 마을회관에 누군가 전화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검색 몇 번으로 누님이 거주한다는 동네의 마을 회관을 찾았다. 마을 회관에 전화를 걸었다. 벨이 몇 번 울리고 기적처럼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다행히 누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몇 번 방문했던 환자 또한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님은 다른 곳으로 떠나고 계시지 않는다고 했고 연락처도 모른다고 했다. 고맙게도 누님의 연락처를 아는 지인을 알고 있으니 며칠 시간을 주라고 했다. 저 멀리서 희망의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드디어 누님 연락처를 안다는 지인의 휴대폰번호가 내 손에 쥐어졌다. 내 머릿속으로는 벌써 누님이 환자를 보러 달려오고 있었고 환자와 부둥켜안으며 수십 년의 세월을 지워내고 있었다. 호스피스 병동 직원들은 한마음이 되어 기뻐했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지만 통화는 되지 않았다. 출근해서 한번, 점심시간에 한번, 퇴근 전에 한번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전화를 했지만 통화는 할 수 없었다. 혹시나 해서 동트기 전 새벽에도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도 전화를 했다. 주말에도 나는 내 휴대전화를 쥐고 잠이 들었다. 환자의 상태가 나빠져 가고 있는 만큼 내 마음은 더 급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2시가 좀 넘은 시간 내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누님의 전화라는 것을 알았다. 전화를 받았지만 끊어졌고 다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그렇게 환자의 남은 시간이 사라져 갔다.
매일 나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나에게 누님의 연락 여부를 물었다. 누님이 몰라서 면회를 못 오는 것이지 전화를 안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말만 계속했다. 기력이 없어 말을 할 수 없을 때에도 나를 보며 눈으로 물었다. 나는 같은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렇게 그리워하던 누님은 만나지 못한 채 하늘의 별이 되었다. 어린 시절 누님과의 추억을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누님을 한번 만나고 싶어 하던 그 환자는 자신이 잘못한 게 많아서 형제들에게 살아있는 내내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예뻐하던 누님을 그리워한 것은 어쩌면 어린 시절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이었을 것이다. 조금 더 일찍 가족을 찾았더라면 그립던 누님을 만날 수 있었을까? 결과가 좋지 않으면 마음이 무겁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부디 하늘에서는 아프지 말고 그리운 가족들을 만나 어린 시절 행복했던 때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