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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Nov 15. 2023

술래잡기

 은영이 엄마와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엄마를 피해 은영은 차오르는 숨을 참으며 골목을 달릴 뿐이었다.

 “은영아! 약 먹자. 약을 먹어야 낫지. 은영아! 은영아!”

등 뒤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은영은 계속 달렸다. 골목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때야 은영이 멈춰 섰다. 또래보다 키도 작고 몸무게도 작게 나가는 은영은 늘 잔병치례가 많았다. 병원 단골손님이었지만 약 먹을 시간이 되면 어디서 힘이 나는지 온 동네를 도망 다녔다. 

 “은영이 니 약 또 안 묵으면 큰일 난다. 알겠나? 내가 약  몇 갠지 다 세놨다.”

 “엄마! 내가 밥도 묵고 약도 잘 묵고 있을게”

 열이 올라 퉁퉁 부은 얼굴의 은영이 마루에 앉아 아침 일찍 밭일 가는 엄마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있었다. 엄마가 없는 부엌에서 부지깽이로 아궁이 속을 헤집자 부엌이 금세 연기로 가득 찼다. 연기를 피해 마루로 나온 은영은 엄마가 챙겨놓은 약봉투를 보고 걱정이 되었다. 사실 은영은 약을 잘 삼키지 못해 엄마에게 늘 혼이 났다. 어른들이 약 먹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물을 한 바가지를 먹고도 입안에든 약은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아무리 삼키려 해도 넘어가지 않는 알약들은 물을 먹으면 먹을수록 입안에서 녹아 쓴맛을 더할 뿐이었다. 결국엔 입안에서 녹아 버린 약을 삼키지 못하고 토하듯 뱉어냈다. 은영엄마는 그렇게 뱉어진 약을 주워 은영의 입에 다시 넣곤 했었다. 아침에 엄마와 손가락까지 걸고 약속을 했지만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았다. 알약도 먹기 힘들지만 오늘은 가루약이다. 알약 삼키는 것을 힘들어하니 가루약으로 받아온 모양이다. 아침에 엄마가 숟가락에 물과 가루약을 풀고 한 손으로 코를 막고 입에 숟가락을 밀어 넣어 삼키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역겨운 약냄새와 쓴맛은 은영의 입에 자물쇠를 걸었다. 은영은 큰 결심을 한 듯 아궁이 앞에 다시 앉았다. 아궁이 안 남은 열기 때문인지 약봉지를 쥔 손에서 땀이 났다. 

 점심때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엄마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부지깽이를 든 엄마가 은영을 향해 달려왔다. 은영은 엄마를 피해 대문 밖으로 뛰었다. 도깨비 얼굴로 변한 엄마가 은영의 얇은 팔을 순식간에 낚아채 사정없이 부지깽이로 은영의 등짝을 후려쳤다.

 “귀신을 속여라. 이놈의 가시나. 약 먹으라고 아침에 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하드만 정지에 약을 부! 약이 공짠 줄 아나!”

 순간 은영은 얼음이 되었다. 은영의 머릿속도 하얗게 변했다. 뽕나무 부지깽이가 부러지고 나서야 엄마는 은영의 팔을 놓아주었다. 수돗가에 앉은 은영은 멈추지 않는 눈물이 원망스러웠다. 분명 아궁이에 가루약을 넣고 재로 덮었다. 그리고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본 사람도 없는데 엄마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지만 참아야 했다.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보지 않아도 모든 것을 다 아는 엄마에게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말자 다짐했다. 그날 저녁 은영은 엄마가 보는 앞에서 약을 먹기 위해 물을 한 바가지나 먹어야 했다. 

 며칠뒤 은영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우찌 알았는데?"

 ”니 내가 우찌 알았는지 알고 싶나? 엄마는 안 봐도 모르는 게 없다. 또 거짓말하면 그때는 집에 못 들어오게 할 끼다.”

 “그래서 우찌 알았냐고?”

 “정지에 밥하로 들어와 큰솥을 보는데 정지 바닥에 하얀 가루가 이때. 그때 알았제. 아! 이기 약 못 묵겠으니까 여따 버린기다 싶었제”

 그날 은영은 가루약봉지를 펼쳐 두 손으로 잡고 아궁이 속으로 털어 넣었다. 그런데 가루약을 싼 얇은 종이가 아궁이 열기에 살짝 흔들리면서 가루약이 조금 바닥으로 떨어졌다. 놀란 은영은 발로 비벼 가루약의 흔적을 없앴지만 엄마가 알아버린 것이었다. 약을 싼 종이를 펼치지 말고 그대로 아궁이 속으로 던졌더라면 등이 아파 며칠 동안 엎드려 자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은영은 그날 부지깽이로 맞은 것보다 엄마의 거짓말에 허탈했다. 엄마는 귀신같이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이었는데 다 거짓말이었다니 엄마에게 속은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물그릇과 약봉지를 든 엄마와 절대 입을 벌리지 않으려는 은영의 술래 잡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골목을 달리는 은영의 마음처럼 산아래 노을도 그날의 아궁이 속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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