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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Jan 09. 2024

내 생일에는 선물대신 규칙이 있다.

미역국

 결혼 전에는 친구들과 생일을 챙기고 나이 들어서는 여동생과 케이크도 사서 숟가락으로 막 퍼먹고 쇼핑도 다니고 나름 즐겁게 생일을 보냈다. 결혼하고 나니 내 생일은 사라졌고 아이들과 남편, 시부모님 생일만 남아 1년 내내 스트레스였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나의 생일을 엄마만 기억해 줬다. 당일이나 며칠 남았지만 미리 전화를 해서 미역국을 꼭 끓여 먹으라고 당부를 하신다. 간혹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내 생일지만 나를 낳는다고 얼마나 용을 쓰고 진을 뺐는지 아이 둘을 자연분만 하고 나니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내 생일에도 내가 미역을 불리고 반찬을 해야 하니 너무 지치고 힘들어 애들 키우면서는 내 생일은 잊고 살았다. 그게 더 편했다. 간단히 배달음식을 먹어도 상 차리고 뒤치다꺼리는 또 다 내차지니 그냥 마음속에서 없앴다. 직장에 다니니 운 좋게 내 생일날 구내식당에서 미역국이 나오면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그날은 집에 와서 미역국을 끓이지 않았다. 오늘도 미역국을 끓일 생각이 없었지만 운동을 하고 거실로 나가니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아파서 운동을 보름 가량 쉬고 다시 운동을 시작하니 기운이 더 없는 것 같아 미역을 불리고 미역국을 끓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미역국에 고기를 넣지 않는다. 미역국이라서 고기를 넣지 않는다기 보다는 물에 빠진 고기는 선호하지 않는다. 정말 맛있는 고깃국이 아니면 냄새 때문이라도 입속에 먹기 싫은 고깃국물을 넣기가 힘들다. 비위가 약한 것도 있지만 미역국은 미역만 들어가도 맛있기 때문이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넉넉하게 넣어 뽀얗게 우러난 미역 고유의 국물을 나는 좋아한다. 그렇게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미역국 한 냄비를 끓여 놓고 방으로 들어왔다. 내일 아침 일찍 눈을 뜨면 보온병에 담아 가 회사에서 먹을 것이다. 물론 내일아침에 마음이 바뀔 수도 있지만 지금의 마음은 그렇다. 

 아이들이 좀 크니 생일을 알려주면 생일선물을 기프티콘으로 보내기도 했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라 취소를 하곤 했었다. 그래서 내 생일에는 규칙이 있다. 규칙이라고 하지만 특별한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첫 번째 선물을 대신하는 큰절이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날림으로 하지 않고 정성 들여 절을 해야 한다.  두 번째 나의 생일날은 짜증과 화를 내면 안 된다. 최대한 공손하게 나를 대하고 말투도 다정해야 한다. 여기에 내가 부탁하는 것들을 대체적으로 들어줘야 한다. 커피를 부탁하면 타다 줘야 하고 간단한 설거지도 부탁하면 군말 없이 해야 한다. 쓰레기를 버려준다던가 창문을 열거나 닫아주라고 하면 바로 실행해야 한다. 이 간단한 규칙이 지금껏 자신들 위주로 살아온 아이들은 좀 힘들 수도 있겠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의 용돈을 줄 수도 없고 명품선물을 줄 수도 없으니 이거라도 마음을 담아 하라고 했다. 큰아이와 작은아이 둘 다 아직은 어색한지 절도 날림이다. 작년에도 급하게 절을 하고 자기 방으로 도망을 갔다. 그래도 하루동안 사춘기 치고는 짜증과 화는 잘 참아줘서 고맙다. 어릴 때 시골에서는 생일이면 시루떡을 해서 동네아이들을 초대해 나눠 먹었다. 지금이야 '생파'라는 게 있지만 도시도 아닌 시골에는 먹을 것이 귀하니 잔치에는 떡을 한다. 그렇게 떡을 먹고 제철 과일을 먹는다. 나는 겨울에 태어나서 홍시나 고구마를 삶아 먹었던 것 같다. 가래떡을 뽑아 떡볶이도 해서 먹고 동네아이들과 신나게 떠들고 놀았던 것 같다. 지금의 아이들의 생일과는 너무 다른 어린 시절 생일이 생각나는 밤이다. 나를 낳고 추운 겨울 산후조리를 어떻게 하셨는지 엄마도 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내 새끼손가락을 보며 추운 동짓달에 태어나 동상이 걸려서 새끼손가락이 휘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내 손은 길고 하얗다. 손가락이 짧지도 않고 오히려 나의 작은 키에 비하면 큰 편이고 못난 편도 아니라 동상 걸린 새끼손가락은 잊은 지 오래다. 

 내일은 50번째 나의 생일이고 또 우연히 월급날과 생일날이 겹쳐서 왠지 기분이 좋다. 그렇다고 월급을 수억씩 받는다거니 연봉이 오르지도 않지만 의미를 굳이 붙이자면 또 충분히 기분이 좋을 수 있는 날이라 즐기기로 했다. 내일은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하루종일 버티리라 다짐해 본다. 생일 당자자보다 더 고생한 건 사실 아이 낳느라 힘든 엄마였을 테니. 내일 뜨끈한 미역국 한 그릇 먹으며 나이 한 살 먹어 보려 한다. 그리고 두 아들들에게 어떤 부탁을 할지 즐거운 고민도 해봐야겠다. 앗싸 50이다. 




반백의 생일축하한다.  앞으로의 반백의 시간을 응원한다.

이제는 널 위한 시간으로 채우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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