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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행복수집러 Mar 25. 2020

생의 이면 (어둠 속에서 빛을 잉태하다)

상처받은 한 인간의 성장기

[서평] 이승우, 생의 이면  


   

‘내가 과연 이 책에 대해 논할 수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이 글을 써 본다.

그만큼 훌륭하고 대단한 소설이라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소설가로서 화자인 '나'가 H 출판사의 기획 시리즈인 '작가탐구'의 필자로서 소설가 박부길과 여러 차례의 인터뷰 내용을 기반으로 그의 작품들과 박부길의 의식 안쪽에 단단하게 붙어 있는 그의 삶과 문학을 지배해 온 흔적을 꼼꼼하게 추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소설 속에 여러 이야기를 넣은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고, 박부길은 ‘사람은 왜곡하기 위해 글을 쓴다’라고 강조하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사실을 왜곡하기 위한 장치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승우 작가는 <이 책은 나의 숨결과 혼이 가장 진하게 배어 있는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난스러운 애정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바라기는 내가 이 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정의 희미한 흔적이나마 독자들에게 가 닿기를. 지상의 모든 눈물겨운 것들에게 이 작품을 바친다.>라고 하였고, 실제 한 인터뷰에서는 소설은 픽션이지만 실제로도 자신의 경험도 많이 반영되고, 박부길의 절대적 사랑의 대상인 교회 여교사 종단과의 사랑이야기도 그렇다고 하였다.      


주인공 박부길은 정신병 질환 겪고 있는 차꼬 쓴 남자인 아버지, 아버지의 폭력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떠나버린 어머니로 인해 보통 아이라면 응당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더 슬픈 일은 아버지의 죽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어머니의 개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야반도주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외로움과 그리움, 치욕, 혐오를 양분으로 성장해 나간다. 중학교 때 아버지 산소를 불태우고 자신의 치욕의 근원인 고향을 떠나 해방을 선언하지만, 그는 아버지를 살해하는 꿈을 자주 꾸게 되고, 끝내 자신의 부끄러움의 뿌리이자 치욕과 증오의 원천인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고향으로부터 ‘필사적인 탈주’을 한 그는 살아남기 위해 중국집 배달일을 전전한다. 다행히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되지만 어머니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고, 다시 만난 어머니에게 그토록 원하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어머님의 자책감이라는 부채와 감정의 황폐함만 얻어 간다.       

부모의 부재에 따른 애정 결핍의 상태에서 혹독한 세상에 대해 알 것은 다 알아버린 불행한 애어른 부길은 어머니의 간청으로 중학교에 진학을 하지만 세상은 항상 그의 편이 아니다. 사람들이 두렵다. 그리하여 어둠 속 골방에 틀어박혀 넓고 당당한 세상과 자신의 좁고 허름한 세계 사이에 견고한 담을 쌓고, 가난과 외로움과 근거 없는 적대감의 나날을 보낸다.     


그는 자신과 함께할 정신의 동반자, 영혼의 동지를 기다린다. 고등학생이 된 그는 중지도에서의 충격적인 치욕을 겪은 후 도망간 한 교회에서 그토록 원하던 성스러운 사랑과 모성의 상징인 ‘종단’을 만난다. 부길은 골방, 그녀는 교회라는 틀 안에서만 살아간다는 ‘폐쇄성’이 서로를 끌어당긴다. 그는 그녀에게서 구원을 발견한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교회를 떠난 삶은 생각도 할 수 없으므로 그녀에게 가기 위해서는 신을 거쳐야 한다.

결국 그는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 대신 신학공부를 하여 목사가 되겠노라고 말하고 신학대학에 진학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인이 되고, 부길의 인생은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의 전환을 맞이하는 듯했다.      

그러나 부길은 어렸을 적부터 사랑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아왔다. 사랑을 받지 못했고 배우지도 못했다. 사랑에도 기술이 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을 배워야 한다면, 사랑이야 말로 그래야 할 것이다. 사랑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부길은 집착과 사랑을 구분하지 못했고, 열정과 사랑의 차이에 무관심했다. 사랑의 기술을 습득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자기감정을 통제하지 못했고, 애인을 향한 돌발적인 신경질과 유아적인 투정을 사랑의 표현인 양 오해했다. 이러한 그의 일그러진 사랑은 질투, 의심, 천박함, 이기심이라는 흉기가 되어 종단에게 깊은 모욕감과 상처만 주었고, 종단은 끝내 그의 완벽한 사랑의 이데아 역할을 포기한다.

결국 그가 사랑한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 안에 웅크리고 있는 나였고, 그녀를 통해 자신의 공허를 매우고 채워질 나를 사랑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어머니였고, 친구였고, 애인이었고, 친구였고, 스승이었고, 우상이었던. 그의 모든 것이었던 그녀와 헤어진 후 그는 다시 그의 공간인 좁고 어둡고 눅눅한 골방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는 절망의 어둠 속에서 새로운 빛을 잉태하기 시작한다. 그는 골방에서 그녀를 만나고 그녀의 피아노를 듣는다. 흡사 고백 성사에 임하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며, 폭풍처럼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를 찾고 있었고, 글쓰기에서 영혼의 구원자를 찾아낸다. 그리고 경건한 상태에서 기도하듯 털어놓은 내면의 고백을 써 내려간다. 그것이 바로 그의 첫 소설 「지상의 양식」이다.    

 

그는 군대에 다녀오고 더욱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는 그의 죄의식의 원천인 아버지를 다시 만난다. 그는 결국 자신의 삶에서 떨쳐버릴 수 없는 아버지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리고 아버지도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한다. 그가 해낸 것은 아버지와의 값싼 화해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교묘한 것이다. ‘죄의식의 되돌림’을 통해 아버지가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것처럼 아버지에게 고통을 나누어 준다. 그리고 이 고통을 통해 그는 아버지를 이해해고, 아버지를 껴안게 된다. 결국 그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고 자신에 대한 새로운 신화를 완성해 나간다.     


이상이 《생의 이면》의 개략적인 내용이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소설 속의 주인공의 상황에 나를 대입해 보았다. 내가 박부길이라면, 부모님의 부재, 절대 고독과 외로움, 세상에 대한 혐오라는 깊은 수렁 속에서, 이를 극복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을까?      


 《생의 이면》에서 ‘이면’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이 훌륭한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싶다. 작가는 <인간의 인격 이면에 숨어 있는 근원적인 실체가 인간을 성장케 한다는 믿음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작가의 집필 의도에 따르면 이는 박부길이라는 상처 받은 인간의 성장기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내가 생각한 ‘이면’은 사랑의 결핍, 부모에 대한 원죄의식, 사회에 대한 혐오 등으로 일그러진 사람의 내면 속에도, 자신을 구원하고 희망 나라로 나아가게 하는 강한 인격이라고 해석하였다. 작가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는 이를 발견하고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소중한 사람들이 이를 느끼고 찾아낼 수 있도록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그 원동력이 무엇이 될지는 각자의 가슴속에서 깊은 성찰을 통해 꺼내야만 하는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말이다.


#이승우 #생의이면 #한국소설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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