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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힐 May 30. 2017

<봄동>, 채의석 감독

*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 심사위원특별상 수상 작품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존재들이 있다.   

  

말장난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알 것이다.     


부재하는 존재. 이들은 때로 실재하는 무엇보다 훨씬 더 나를(너를) 혼란스럽게 하고 쓸쓸하게 한다. 커다랗게 부재하는 존재들 탓으로 나와 너의 가슴은 따끔따끔 아프고, 머리는 시도 때도 없이 멍청해진다. 그 불편함을 피해보려 나는, 그리고 너는 온갖 애를 다 쓰는 것이다. 온갖 애를 다 쓴다고는 하지만 결국 둘 중 하나를 택할 뿐이다. 부재하는 존재를 붙잡으려는 것이거나, 부러 놓아버리려는 것.     


부재하는 존재란 이를테면 만수의 아내, 상우의 어머니이다. 영화 <봄동>은 아내, 그리고 어머니를 잃은 부자의 이야기이다. 실재하던 존재가 부재하게 되는, 이른바 상실을 겪은 이들은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아프다. 말하자면, 아버지 만수는 아내의 울타리 안으로 자꾸만 회귀하려 하고, 반면 상우는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함이다. 이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봄동’을 둘러싼 두 인물의 대립이다. 봄동은 어머니의 상징이다. 생전에, 어머니는 아들에게 해마다 봄동을 해주었다. 아들은 어머니가 해주는 봄동을 좋아했다. 아버지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떠난 후에, 아버지는 자꾸만 봄동을 돌본다. ‘네가 봄동 좋아하잖아’라고 아들에게 둘러대지만, 아버지가 봄동을 돌보는 것은 단지 아들이 좋아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먼저 떠나버린 아내에 대한 극진한 그리움을 밭갈이로 승화하려는 것이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영 익숙지 않다. 그래서 이미 팔아버린 땅에서 무단으로 경작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짐짓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는다.     

영화 <봄동> 스틸컷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봄동을 두고 부자는 앓는다. 봄동을 경작할 것인가, 말아야 하는가를 두고 저마다 앓는다. 봄동을 경작하는 땅, 그곳은 과도기에 처한 땅이다. 농촌에서 도시로 전환되어 가는, 개발이 한창인 공간에서 아직은 놀고 있는 땅, 그러나 곧 개발의 시류에 휩쓸려갈 땅이다. 그 땅 위에서 대립하는 만수와 상우 부자도 과도기에 처해있다. 아내, 어머니가 부재한 새로운 세계를 맞닥뜨려 그 세계에서 다시금 적응하고 살아가야 한다. 인물과 인물이 속한 공간의 운명이 같다. 영화는 담담하게, 약간은 애틋한 듯이 인물과 공간을 비춘다.     


만수와 상우 부자뿐만 아니라, 공간의 변화에 직면하여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적응해가는 인물들이 영화에는 등장한다. 어떤 이들은 다분히 현실적이고 타산적으로 공간의 변화를 이해한다. 둔감하지는 않으나 무감한 인물형이다. 어떤 이는 마냥 합리적이지도, 얼큰히 감성에 매몰되지도 않은 채, 어정쩡하게 머물러 있기도 하다. 다영이 그렇다. 다영은 자신이 살아온 공간에 불어 닥친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그래서 그녀는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상우를 다시금 서운하게 한다.    

 

영화가 마무리될 즈음에 이르러, 과도기에 처해있던 인물들의 처지도 조금씩은 달라진다. 아버지 만수는 아들 상우와 올해까지만 봄동을 재배하기로 약속한다. 이제 더 이상 봄동을 경작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부재하는 존재로부터의 탈피를 선언한다. 상우는 아버지가 무쳐준 봄동을 맛나게 먹으며, 아버지의 아픔을 보듬고 더불어 자신의 아픔도 함께 치유하고자 한다. 화해. 그리고 상우는 근처의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어쩌면, 자신 앞에 달려든 변화에 대응해갈 힘이 조금은 생긴 것일까.     


만수와 상우, 다영. 그리고 공간을 담아내는 데 있어서 어느 하나도 모나 보이지 않도록 하려 한 감독의 노력이 고맙다. 그것은 마치, 혼란한 시기에 처한 이들 모두를, 나아가 그 혼란한 시기마저도 포용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장면 하나하나는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해서 마치 어머니가 무쳐준 봄동처럼 정갈하다. 직접 말씀드리지는 못했지만, 어떻게 그런 장면들이 나올 수 있었는지, 촬영감독님을 실제로 뵈었을 때 나는 어떤 직관적인 느낌으로 이해가 되었다.     


담백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아, 단편 영화를 접해 보지 않은 이라도 크게 낯설음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 <봄동>은 올해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으며,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꾸준한 호평을 받고 있다.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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