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le Jul 25. 2022

느린 걸음에 서로가 있기를

We are our own leaders

점입가경이다. 운명의 대통령 선거날은 밝았고 예상대로 대통령 권한대행 라닐 위크레마싱게 총리가 새 대통령에 선출됐다. 유효투표 219표 중 134표.  절반의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위대한 한걸음을 다시 제자리로 되돌렸다. 새 대통령은 선출되자마자 반정부 시위대를 ‘파시스트’로 규정하며 강경한 진압을 시사한다. 그리고 임기 중 처음으로 한 일이 대통령 집무실 앞 캠프 강제 해산과 자신의 최측근이자 라자팍사 집안에 오랫동안 협력했던 집권세력 구나와르데사 신임 총리 임명이었다.

반정부 시위대는 투표 결과를 인정할 수 없었지만 22일 오후 오랜 시위를 끝내고 자진 해산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는 21일 자정 기습으로 수백 명의 중무장한 군인과 진압장비를 갖춘 경찰특공대를 대동하여 시위 캠프를 부수고 진압한다. 무장하지도 않은 활동가들과 시민들에게 강압적인 폭행과 재산상의 손해를 입힌 것이다. 현장에 있던 외신기자, 변호사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쳤으며 스리랑카 변호사협회는 “민간인에 대한 불합리하고 불균형적인 경찰의 행동을 중단하라”라고 촉구했다.


이미 철거를 약속한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가해진 폭력사태 과연 민주주의에 위협을 가하고 건 어느 쪽일까 싶다.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된 스리랑카 경찰과 군은 영장 없이 시민들을 체포하고 억류할 수 있다. 때문에 헌법에 보장된 이동의 자유나 평화적으로 시위할 권리 같은 표현의 자유는 이곳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다면 반정부 시위대는 새 정부의 말처럼 법을 어기고 평화를 무너뜨리는 흉악한 폭도들일까.. 그동안 친정부 시위대에 맞대응하거나 총리 관저에 불을 지르는 등 일부 과격 행보를 보인 것도 사실이지만 제3인칭 관찰자 입장에서 본 스리랑카 국민들은 정말 참을 만큼 참았다.


그리고 지난 몇 달 시위대는 평화롭게 자신들을 노래했다

지난주 용기를 내어 방문했던 반정부 시위대의 텐트촌. 언뜻 보면 어지러운 미로 같지만 이곳은 나름의 질서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나의 지역사회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우선 정부군과의 충돌과 부상자 발생 위험 때문인지 입구에는 적십자와 ST. John가 구급차가 자리했다. (자기 몸에 안전을 지킬 권리) 공립학교는 모두 휴교이지만 이곳의 학교는 연중무휴 열려있고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시민들은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다. (교육을 받을 권리). 원한다면 법적 자문을 얻을 수 있고 (법적 보호를 받을 권리) 자체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을 향해 말할 수 있다 (의사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


Voice of the People


그리고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서로가 연대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고 준비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이 텐트촌은 인종, 종교, 문화도 참 다양한 랑카의 사람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보살피는 그루터기인 것이다. 이 넉넉한 쉼터에선 결코 나보다 약한 자를 소외시키지 않는다. 그저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내가 아닌 타인에게도 나와 똑같은 권리와 자유가 있음을 그리고 이를 온전히 인정하고 존중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흔들리는 격랑 속 작은 텐트에서 자라나는 성숙한 시민의식. 과연 정말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하는 것이 어느 쪽인 걸까?

이곳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 예술을 즐길 권리도 충분히 누리고 있었다. 예술가들은 그림을 그리고 작은 갤러리를 열어 세상에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누군가가 다가와 그 의미를 묻는다면 무엇이 자신들을 이 길 위로 내몰았는지, 왜 이 땅에 변화가 찾아와야 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저 세상이 불만이어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공공질서를 해치는 위험한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의견을 표출하고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평화롭게 웃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우리 주변에 평범한 이웃이었다.


Where is Justice?


이 길목에서 나는 통곡의 벽을 본다. 빼곡히 꾹꾹 눌러 적어간 사람들의 메아리 그 끝에 어김없이 질문이 있었다.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권력자의 배를 불리던 대통령궁은 잠시 시민들의 품에 안겼지만 사람들은 그 공간마저 결코 남용하지 않았다. 때가 되니 비우고 어질러진 공간을 깨끗이 치워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진 못한 채 아직 좁은 텐트를 피난처로 삼고 있었다. 그 앞을 뛰노는 아이들은 낯선이가 건네는 손 인사에 수줍게 숨었다가 쪼르르 달려와서는 귀한 과일을 기꺼이 내어준다. 깜깜한 밤 갑자기 들이닥친 무서운 사람들이 무너뜨린 건 단지 쇠와 천이 아닌 그들의 지붕이자 하늘이란 걸 알고는 있을지…

텐트촌이 공격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날.. 아이들이 무사한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없었다. 다시 가본 Galle Face Road 모든 입구는 군이 통제하고 있었고 가는 길마다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는 오색기가 나부끼고 있다. 무려  퍼레이드를 했다는데 연료를 구하려 차들이 주차장처럼 늘어선 좁은 길을 통제했을 생각을 하니 실소가 나올 뿐이다.  전문직 단체, 정당들은 군사력을 이용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규탄했으며, 콜롬보 대주교 말콤 란지스 추기경은 독립적이고 투명한 조사를 유엔인권위원회에 요청할 것이라 발표했다.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면 다시 뒷걸음. 그리고 다시 제자리걸음. 언제쯤 랑카는  달팽이 걸음에서   전진할  있을까.  이방인도 독백 같은 질문만 되뇌게 되는 참 아픈 밤이다.


이전 05화 부서진 스리랑카에도 봄은 오는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