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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Jul 20. 2022

부서진 스리랑카에도 봄은 오는가

위대한 한걸음 그리고...

태풍의 눈 속 랑카 생활을 하는 내게 현지 직원은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You are experiencing and suffering the weird era of this country!”
우리는 가장 어렵고 이상한 랑카의 터널을 건너고 있어...

결혼식을 앞두고 기름이 없어 직계 가족들만 참여하는 스몰웨딩을 하게 된 그녀의 청첩장에는 줌 미팅 링크가 큼지막히 찍혀 있다. 전염병도 아닌 연료 부족으로 결혼식도 온라인으로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그야말로 생계를 이어가느라 잠시 숨을 고르던 사람들의 아우성이 되살아났다. 띠링~ 또다시 대통령 퇴진 대규모 시위 예정 알림이 도착했다. 콜롬보 내엔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SNS 메시지가 삽시간 퍼지기 시작하고 시위 규모는 전국적으로 확대된다. 상황이 심상치 않은지 대사관의 비상연락망이 가동되고 오후엔 서부주 대부분 지역에 통행금지령이 내려진다. 하지만 무너진 공권력은 성난 민심을 누르기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랑카의 거대한 발걸음이 시작되고 있었다.

토요일 오전부터 대통령 집무실 인근 포트 기차역을 주변으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기 시작한다. 거리에는 국기를 몸에 두른 사람들의 무리들이 점차 많아지고 이제 시위대로 도로 진입이 불가능해지는 곳들이 생겨났다. 점심이 지나자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넘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결국 여야 대표 회동으로 관저를 도망치듯 빠져나간 라자팍사 대통령은 구두로 대통령직을 사임하기에 이른다. 다만 대통령 사임  최대 1개월  총리가 권한대행을 수행한다는 발표에 대통령과 총리의 동반 퇴진을 요구하던 시위대들은 총리의 집까지 불태워 렸다. 대통령 탈출을 도운 공군에게까지 시위대가 들이닥치자 다음날 아침 하늘엔 저공비행을 하며 도심을 정찰하는 공군의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왔다. 전시상황을 방불케 하는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쫓기듯 자국을 탈출한 라자팍사는 공군기로 몰디브를 걸쳐 싱가포르로 도피했다. 약속한 날짜에 제출되지 않는 사임계 그리고 총리가 차기 대통령직에 대한 의지를 보이자 시위대는 총리 집무실도 포위 및 점거한다. 놀랍게도 라자팍사는 싱가포르에서 도피 5일 만에 '이메일'로 사임계를 제출했다. 길고 긴 라자팍사 가문의 족벌정치의 초라한 마감이었다. 대통령 상태여야 면책 특권이 있고 해외라 자신을 못 잡으니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때 이메일로 통보라.... 무능과 부패의 끝은 비겁하기까지 하다.


대통령 대행 국무총리는 국가비상사태 선포하고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국가 치안유지 목적으로 도심 내 군경 배치를 확대했고 무력사용을 경고했다.(길거리에 실제 최루탄이.....) 그리고 대통령 사임 후 7일 내 드디어 내일 7월 20일 정부는 의회 간접선거로 잔여 임기를 수행할 새 대통령을 선출한다. 시위대는 국회가 새로운 대통령 선출을 한다는 소식에 대통령 집무실 점거를 풀고 선거 결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런지 예측할 수가 없다. 마치 태풍이 오기 전의 기다림... 예측이 어려운 기다림은 언제나 가장 겁이 난다. 그 어떤 무력충돌 없이 랑카는 변화의 시작을 꽃피울 수 있을까. 부디 거센 바람이 위태롭지만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고 거대한 용기로 당당히 맞서 자신을 지켜내는 사람들의 터전을 집어삼키지 않길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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