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율 Nov 01. 2020

4) 밤이를 처음으로 만난 날

2장

내 몸 상태는 천천히 좋아졌다. 의사 선생님은 좀 나아진 이 즈음이 되어서야 내 상태가 많이 위험했다고 했다. 찾아보니 폐부종이라는게 그렇게 위험한 거였더라. 폐에 찼던 물은 소변으로 배출 되면서 붓기도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고비가 일단락 되면서 나는 서서히 퇴원을 준비했다. 병원에서는 사흘정도 후에 퇴원하기를 권유했다. 


일반 병실로 옮긴지 이틀째. 나는 그제야 간신히 밤이를 볼 수 있는 몸상태가 되었다. 걷기는 커녕 몸을 일으키기도 쉽지 않은 상태라 휠체어를 이용했다. 밤이는 내가 머무는 병실에서 한층 아래에 있는 어린이 병동 nicu에 머무르고 있었다.


“니큐 면회는 주 2회, 정오하고 오후 6시에 가능해.  들어가기 전에 준비를 해야 하고.”


신랑은 먼저 밤이를 봤기 때문에 나에게 준비 절차를 자세히 알려주었다. 준비라 함은 리스트에 이름을 적는것과 가운을 입는 것, 손에 소독제를 바르는 것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니큐 안으로 향했다.


커다란 박스, 인큐베이터 안. 

우리 밤이는 그 안에 맨몸으로 누워있었다. 

머리에 커다란 **양압기(;호흡을 도와주는 도구)를 달고서.


삑. 삑. 삑...


밤이도 어제의 나처럼 몸 여기저기에 선을 붙이고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난 휠체어에 앉은 채, 밤이를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렸다.


사람이 이렇게 작을 수도 있구나. 


1.28kg. 태어날 때의 밤이 몸무게다. 보통 신생아의 몸무게는 3kg가 넘으니까 우리 밤이는 그 반도 안되는 크기였던 거다. 40cm가 채 되지 않는 밤이는 정말 내 팔뚝만했다.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 ‘작다’라는 이 말이 이토록 가슴에 절절하게 와 닿았던 적이 없다. 


밤이는 정말 건드리기라도 하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이 여렸다. 


“미안해. 밤이야 미안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미안해 뿐이었다. 아니, 그 말만으로도 너무나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어떡하지. 내가 엄마인데 아이한테 해줄 수 있는게 없다. 나 자신이 그때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절절하게 깨달았다. 


30분의 면회시간동안  나는 하염없이 밤이를 보고만 있었다. 밤이는 코에 호스를 낀 채로 조금씩 꼬물거렸다. 눈은 가린 채였다. 황달 치료를 위해서였다. 눈을 보고 싶었지만, 원래대로라면 밤이는 아직 내 뱃속에 있어야 하는 시기였다. 주변이 어두운 게 맞는거겠지.


면회 시간이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그 첫날은 정말 밤이를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밤이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이라 아무것도 하지를 못했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꼬물거리던 모습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사진 주의*)

밤이와의 첫 만남. 정말 작았던 밤이. 난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다.






밤이가 태어난 후 조금 회복된 다음 나는 망설임 끝에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하기로 결정했다. 어쨌든 언젠가는 다 알게될 거 내가 먼저 소식을 전해는게 맞지 않을까 해서. 


처음엔 내가 일하던 그룹의 단체카톡에 글을 올렸다. 그런데 참, 이게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할 지 그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이미 내가 입원했단 사실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하다 짧게 출산 했다는 글을 남겼는데, 뭔가 반응들이 다들 축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조금 일찍 낳았다는 말 때문이었을까. 고생했다는 말 한 두마디가 전부였고, 그 이상의 말은 없었다. 그 이후에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 그룹에서 가장 거리가 가까운 친구였다.  


[일찍 낳았어? 얼마나? 아이는 몇 키로야?]


메시지를 보자마자 답하기가 난감해졌다. 원래 출산 직후에는 사람이 예민해지기 마련이지 않은가. 당시의 나는 그 누구보다도 예민해있었고 마음도 많이 여려져 있었다. 타인이 무언가를 물었을 때, 시시콜콜 이건 이랬고 저건 저랬다고 답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특히 밤이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2키로 조금 안 돼.]

[2키로 조금 안 되면 몇 키로?]


몸무게가 적게 태어난 게 엄마의 잘못은 분명히 아니다. 아닌데, 밤이의 몸무게를 솔직하게 말하는 순간 이런식으로 대화가 진행되겠지. 1.2키로? 세상에 엄청작다! 그 말을 들음으로서 아, 작게 낳으면 역시 이런 반응이구나. 조금이라도 더 크게 낳았어야 하는데. 라면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었다. 결국 나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질문을 물어본 친구 본인이 이른둥이였다고 하더라. 그래서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다고.


대체적으로 반응이 같았다. 놀라거나. 아니면 안타까워 하거나. 안타까워 하는 경우는 보통 나와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들이 그랬다. 숙모는 전화로 울먹였고 친한 언니는 말을 잇지 못해 어떡해…. 를 연발했다. 축하한다고 한 분은 딱 한분, 일터의 사수님 한 분이었는데. 내가 출산하자마자 오, 축하해요!라고 말해주셨다. 그런데 참 사람 마음이란게 참 웃기다.  막상 축하한다는 말을 들으니 나의 삐뚤어진 심보가 이렇게 생각을 해버렸다. 


‘이 상황이 지금 축하할 상황이던가?’


반문 하는 내 모습이 참 웃기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정말 당시의 내 심정은 지금도 이해가 안된다.


그 즈음 친구 두 명이 병문안을 왔다. 맛있는 도시락을 사들고 온 친구들은 그렇게나 반가웠다. 우리는 휴게실로 가서 그걸 먹으며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꼭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처럼 그간의 있었던 일을 주절주절 털어놓았다. 참 고마운게 친구들은 내 이야기를 모두 있는 그대로 들어주었다. 그리고 내게 잘 먹고 몸 건강 잘 챙기라고 담백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그 뿐이었음에도. 나는 그게 참 위로가 되었다. 어떤 말도 얹지 않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었다는 것이. 지금도 나는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하고 있다. 


혹시라도 주변에 지인이 같은 상황을 겪고 있다면, 다만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말 정도면 충분히 위로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후 나는 한동안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때 미처 연락하지 못한 지인과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느 정도 추스린 다음 연락하는 것이 내 마음 건강에 이로웠기 때문이었다.


이전 11화 3) ‘나’에게만 온전히 집중해 주는 공간, 중환자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