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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율 Nov 01. 2020

2) 날 낳아줘서 고마워요, 엄마

2장

입원할 당시 혈압은 120-130 정도를 오갔다. 그런데 30주가 넘어서자, 혈압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130은 가뿐히 넘기고, 140, 150까지 넘어서기 시작했다. 나중에 기록지를 살펴보니 수술 직전엔 혈압이 180까지 올라갔더라. 그렇네. 힘들고 아플만했네. 


숨이 차기 시작했다. 누워 있으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숨을 몰아쉬고 있자니 어지러움도 함께 동반했다. 점점 시야도 흐려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참아봐야지, 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호흡이 잘 되지 않으니 정말로 미칠 것 같은 상황들이었다. 살려주세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단순히 혈압이 올라갔다는 증상뿐이 아니었다. 몸은 마치 물에 절은 스펀지처럼 퉁퉁 부어올랐다. 그 당시 내 상황을 찍은 사진을 보면 못 알아볼 정도로 몸이 불어 있었다.


결국, 나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새벽 내내 괴로움에 몸부림을 쳤다. 괴로워서 간호사를 몇 번이고 호출했다. 그날 저녁은 주말이어서 담당 의사 선생님은 병원에 있지 않았다. 간호사가 사태의 심각성을 확인하곤 담당 선생님에게 전화를 한다고 했다. 나도 그 와중에 집에 있던 신랑에게 전화했다. 그때가 새벽 서너 시쯤이던가. 신랑은 전화를 받자마자 병원으로 달려왔다. 이 과정에서 나는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 수술대에 오르겠구나. 며칠 전, 같은 병실에 있던 다른 산모도 갑자기 수술하려고 침대를 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짐작한 것이었다. 나 역시 그러지 말란 법은 없었으니까. 달리 고위험 산모 병실이 아니었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 나는 직접 친정에 전화했다. 새벽 다섯 시. 엄마는 금방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를 듣자 금방이라도 울고 싶어 졌지만, 꾹 참고 숨을 참아가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곧 수술하게 될 것  같다고. 엄마는 놀라지도 않았고, 오히려 더 침착했다. 그리곤 오히려 강한 어조로 나에게 말했다. 



괜찮아. 울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 엄마 금방 갈게.


평소 엄마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나는 서운하지 않았다. 만약 엄마가 더 놀라고 당황하면서 정신없이 호들갑스럽게 말했더라면 내가 더 불안했을 것이다. 늘 강단 있고 침착한 엄마의 모습에 나는 안심을 했다. 


 그즈음 간호사는 내가 수술대에 오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는데 무시무시한 조항들에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혹시라도 잘못될 수 있는 일’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마음을 단단히 가져야 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위안했다. 괜찮을 거라고. 


의사 선생님은 아침 일찍 도착하셨다. 곧바로 나는 수술실로 향했다. 산소포화도는 90 아래로 떨어져 있었고, 내 침대 주변으로 신랑과 친정가족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수술실로 향하는 동안, 나는 이제 이 고통스러움이 조금은 해소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던 것 같다. 몸은 전혀 아니었지만. 


수술대에 올랐을 때 무척 눈부신 조명이 내 몸을 직선으로 비추고 있었다. 나는 딱딱한 수술대의 감촉을 등으로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다음 기억은 전혀 없었다. 의식이 돌아왔을 땐, 난 이미 수술이 끝난 다음이었다. 


배가 찢겨나간 것 같은 고통이 일었다. 당연히 아프겠지. 제왕절개를 했으니까. 그 생소한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는 동안, 수술이 시작되었던 시간이 7시가 좀 넘었을 것이다. 밤이는 7시 50분에 태어났다. 나는 12시 좀 안되어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일반실이 아닌, 중환자실로 옮겨졌던 건 보면 내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했던 모양이었다. 


나중에 듣고 보니 내 증상 중 ‘폐부종’이 있었다고 한다. 임신중독 증상 중 하나로 폐에 물이 차는 현상이었다. 그러니 숨이 잘 안 쉬어졌을 거라고. 더  큰일 날 뻔했던 게 내가 숨을 못 쉬는 만큼 밤이도 같이 숨쉬기 어려웠을 거라고 했다. 지금 수술해서 ‘임신 종결’ 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고. 아니었으면 정말 둘 다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밤이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로 들어갔다. 그리고 신생아 중환자실인 NICU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난 전신마취를 했기 때문에 태어난 직후의 밤이를 보지 못했다. 지금도 두고두고 아쉬웠던 순간이었다. 밤이가 태어나는 모습은 직접 보고 싶었는데. 그러나 그것보다 목숨이 더 소중하니까. 일단 나도 밤이도 살고 봐야 했으니까. 아쉬움은 접어두기로 했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수술이 끝나고 난 후, 중환자실에 가장 처음으로 엄마가 면회를 들어왔다. 중환자실에는 면회를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직계가족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것도 하루에 2회밖에 되질 않았다. 엄마가 들어오자마자 나는 거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엄마한테 가장 먼저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날 낳아줘서 고마워요.


내 진심으로부터 우러나온 말이었다. 밤이를 낳고 나면 엄마한테 가장 먼저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엄마가 나를 얼마나 고생해서 낳았을까. 임신했던 기간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것들을 내 온몸으로 체험했으니, 그 말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내 얘기를 듣자마자 울먹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이 울컥했지만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다.


엄마는 일단 내가 깨어나서 안심이 된 모양이었다. 30분간의 짧은 면회시간 동안 수술시간 때 상황이 어땠는지 이야기해주었다. 수술하는 동안 시부모님께서 오셨고 모두 같이 기도하면서 수술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원래 예정했던 시간보다 길어져 한 시간도 넘게 내가 나오질 않으니 무척 걱정했다고. 태어난 밤이를 인큐베이터 너머로 잠시 봤는데 정말 예뻤다고. 그런 말들을 들으며 나는 안정을 되찾아갔다. 


밤이가 예쁘구나. 


엄마의 말을 들으며 나는 밤이가 몹시 보고 싶어 졌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무리였다. 일단 중환자실에서 나가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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