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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율 Nov 01. 2020

1) 내 영혼이 언제나 평안하길 바라며

2장


고위험군 산모실은 한 방에 산모 네명이 들어간다. 내가 지냈던 곳은 그랬다. 다 제각각의 사정으로 이곳에서 아이가 나올때까지 버티는 것이었다.


나처럼 임신중독인 경우도 있었고, 자궁경부 길이가 짧아 금방이라도 애가 나오려고 하는 산모도 있었다. 내 옆자리 산모가 그랬는데 벌써 이곳에 온지 한달이 넘어가는 산모였다. 앞으로 두달을 더 버텨야 했다고 했던가. 내 옆자리 산모의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그 분은 24시간 누워있어야 했던 산모의 수발을 하루 종일 들어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대단하신 분이었다. 





새벽 여섯시쯤이 되면 네 명 모두 초음파로 아이 상태를 확인했다. 고위험군인 만큼 산모와 아이의 상태 체크는 아주 중요했다. 의사선생님은 차가운 젤을 배 위에 바르고 기계로 꼼꼼하게 확인했다. 


초음파를 할 때마다 나는 배가 제법 뭉쳐서 고통스러웠다.  뭉침이 있을땐 배에 감각이 없다. 꼭 쥐가 난 것처럼 뭉친 부위가 딱딱하게 굳는 느낌이었다. 잦은 배뭉침은 별로 좋은 현상이 아니라 난 이럴 때마다 늘 긴장했다. 뱃속의 밤이는 괜찮은 걸까. 뭉치는 현상이 나타날 때마다 밤이도 고통스러워하진 않을까. 걱정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며칠동안은 초음파 결과 이상이 없었다. 그러면 안심하고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 뿐 아니라 피검사 소변검사도 빠지지 않고 매일 진행되었는데 나는 여기에 수시로 혈압도 같이 재야했다. 입원한 이후로 혈압이 눈에 띄게 올라가기 시작해서였다. 수술 전에는 130 내외로 왔다갔다 했는데 내려갈 생각은 하지 않고 점점 올라가기만 했다. 정말...이건 내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었다. 안타까움은 점점 더 커져갔다.


입원해 있는동안 가족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엄마도 아빠도,  손에는 먹을 걸 들고 걱정도 한가득 담아오셨다. 입원소식을 알리자마자 시부모님께서 한달음에 달려오셨다. 


“그럼 어떻게 되는거야?”


어머님께서 물어보셨다. 

나는 조심스럽게 현재 상황을 알려드렸다.


“더 버티지 못하면 낳아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낳...아?”


그때 어머님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 말 그대로 동공지진을 일으키신 어머님의 표정엔 놀람도, 당황함도, 걱정도 모두 담겨있었다. 그래서 어찌나 **죄송스럽던지.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웃어보였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안심을 하시지 않을까 해서.


**물론 이게 내 잘못은 아니다. 원래 임신중독은 원인을 알수 없는거니까. 내가 잘못해서 생기는 증상이 아니란 뜻이다.





손님은 끊임없이 찾아왔다. 난 그냥 다 감사했다. 내가 참 뭐라고, 이렇게나 걱정해주고 신경쓰는 걸까. 이렇게 일부러 와준 분들에게 감동했다. 별로 슬프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낳아야 하는거 조금 빨리 나오는거잖아. 라고 당시엔 생각했다. 후폭풍이 어떤지도 모르고 말이지.  


그런데 찾아온 분들 중 인상적인 손님들이 한 팀 있었다. 우리 교회 목사님의 소개로 보내주신 중창단이었다. 전문인들은 아니고 동호회처럼 보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손님이라 어리둥절 했던 나에게 그분들은 고요하고 확신있게 말해주었다.


“자매님이 마음이 어렵고 힘든 가운데 있으실텐데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해서 노래를 준비했어요.”

“노래요? 여기서?”

“네!”


나는 당황했는데 그분들은 무척이나 태연했다. 이런 일을 많이 해보신 분들 같았다. 정말 뜬금 없었지. 내가 노래를 불러본 적은 있어도 날 위해 노래를 들려주는 사람은 정말 한번도 없었다. 그것도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시간과 상황에서 그 사람들은 나를 앞에두고 동그랗게 대형을 만들었다. 


그러더니,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너무 잘 아는 곡이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


곡조는 곧 화음이 되었고 넓은 병실 통로를 가득 메웠다. 울리는 공간이라 그 소리가 더 꽉 차게 울렸다. 


그 순간, 나는 나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감정을 문득 깨달았다.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이 많이 힘들었구나. 

놀라웠고, 당황스러러운 그 순간들을 힘겹게 버티며 괜찮다고 억지로 스스로를 위로했었구나.


하... 정말 그 상황이 웃기면서도 와중에 얼마나 눈물이 나든지.


곡이 끝날 때까지 눈물은 멈추질 않았다. 나는 더 울지 않으려고 열심히 참았고 코를 훌쩍거렸다. 몇 분밖에 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동안 나는 적잖은 위로를 받았다. 나를 전혀 몰랐던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이, 무언의 응원은 출산날까지 버틸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정말 많은 힘이 되었다. 


그 손님들을 끝으로 나는 더더욱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30주를 막 넘긴 주말 저녁. 나는 내 몸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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