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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율 Nov 01. 2020

3) ‘나’에게만 온전히 집중해 주는 공간, 중환자실

2장

중환자실에 여자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날 수술해 주신 의사선생님과는 다른 분이었다. 중환자실을 담당하는 분 같았다.


젊은 분이었는데, 무척 카리스마 있는 분이었다. 그때 그 선생님이 나한테 했던 말이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여긴 중환자실이고, 이 공간엔 산모님만 계세요.
여기에 있는 간호사와 의사 모두 산모님께만 집중합니다.
아이는 어린이 병원에 있는 분들이 최선을 다해 돌봐주실 거예요.
그러니 산모님도, 자신의 몸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세요.


진짜, 이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고 감사했는지. 아이보다 ‘나’에게 집중할 거라는 선생님의 카리스마 넘치는 발언에 홀딱 반해버렸다. 그리고 정말 선생님 말씀대로 빨리 회복하는 데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 선생님은 말씀 뿐 아니라 실력도 엄청 좋으셨는데 직후에 이런 일이 있었다.


“환자분, 동맥혈을 뽑아야 하니 잠시 손목 좀 내어주세요.”


아주 젊은 의사분 두 분이 검사를 위해 내 손목에 바늘을 꼽으려고 했다. -이제 갓 의사가 된 분들 같았다.- 그런데 바늘을 찌를 때마다 너무 아팠다. 내가 하도 끙끙거리니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었는지, 젊은 선생님들은 내게 위로의 말을 해주신 카리스마 선생님을 불러오셨다. 그 분은 정말 빠르고 깔끔하게 내 손목에 바늘을 꼽았다. 나는 진짜 깜짝 놀랐다. 몇 번을 시도해도 안되던 것이, 카리스마 선생님께서 해 주셨을땐 정말 한번에 끝나버려서였다.


“와…! 선생님 진짜 하나도 안아팠어요!”


너무 신기하고 놀라워서 그 아픈 와중에도 감탄을 했다. 카리스마 선생님은 이름답게 한번 씩 웃어 주었다. 





나는 누워있는 채로 하룻동안 중환자실에 있었다. 일정 시간이 되기까지 물을 마실 수 없어 굉장히 목이 말랐던 기억이 난다. 간신히 물을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조금은 살 것 같았다. 여전히 배는 너무나 아팠지만.


나는 배에서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버튼을 눌렀다. 링거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무통주사액이 내 몸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렇게 나는 통증을 버텨냈고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시간이 좀 흐르니 처음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저녁이 6시가 되자, 신랑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출산 후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었다. 


“….”


우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신랑도 나도 울 것 같아서. 나도 최대한 눈물을 참고 있는데 신랑이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런데 말을 안해도 알 것 같았다. 얼마나 그 순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까.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그 모든 뒤치다꺼리를 신랑이 다 도맡아 했다. 밤이한테 필요한 물건을 사고, 집을 정리하고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께 연락을 하고 내 곁에서 있어주고, 뭐 하여간 그 모든 잡다한 것들을 신랑이 다 했다. 병실에 있는 나를 보며 가슴이 얼마나 타들어갔을까. 마음고생은 또 얼마나 했을까.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얼마나 마음이 착잡하고 겁이 났을까. 하필, 내가 수술하기 직전의 새벽에는 그렇게 **코드블루(:심정지) 방송이 많이 흘러나왔더란다. 가뜩이나 마음도 약한 신랑이 얼마나 힘들어 했을지 안 봐도 짐작이 갔다. 


“오빠….”


그런데 이땐 정말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다. 진정이 되질 않으니 모니터에서 삑삑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혈압이 점점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 중요한 순간 울리는 기계음에 나는 갑자기 웃음이 터질 뻔 했다. 


“밤이, 참 예뻐. 진짜 예뻐.”


오빠도 이미 반쯤 울고 있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서 천천히 마음을 나누었다. 같이 뭔가 넘어야 할 경계선을 힘껏 뛰어넘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새삼 느껴지는 것이었다. 


우리 정말 부모가 되었구나


오빠의 면회가 끝나고 나는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하루를 보냈다. 저녁이 되자 간호사 선생님의 도움으로 TV정도는 볼 수 있게 되었다. 방송이 재미는 없었지만 그럭저럭 시간을 보낼 수는 있었다. 


신기할 정도로 이젠 숨이 차지 않았다. 어지럽지도 않았고. 조금씩 상태가 호전되어갔다. 문득 생각나 배 아래를 내려보았다. 아, 이젠 태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전날까지만 해도 뱃속이 자주 꿀럭거렸었는데. 정말 밤이가 이제 세상 밖으로 나왔구나. 깨달았다. 


나는 또 밤이가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밤이의 상태가 걱정되었다. 일반 아이들보다 10주나 더 빨리 태어난 아이였으니까. 그동안 검색하면서 읽었던 이른둥이의 수많은 합병증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밤이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내 탓이 아니라지만,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죄책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얼른 일반 병실로 가고 싶었다. 그러면 밤이를 볼 수 있겠지. 


중환자실에서의 고요하면서도 긴 하룻밤이 흘러갔다. 나는 그럭저럭 회복한 덕분에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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